한미약품 신용등급 A+로 올라
기술 수출‧영업‧신약 개발 등
투자와 성과 '선순환 구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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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바이오 투자열기에 보수적인 크레딧시장의 시각도 변하는 분위기다. 몇몇 대형 제약사는 신용등급도 오르고 채권시장의 환대 속에 성황리에 회사채를 발행했다. AA 신용등급 제약사의 출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장밋빛 전망은 시기상조다. 연구‧개발(R&D)과 투자는 한창 이뤄지고 있지만, 그 성과가 가시화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결국 제악업계의 성공사례가 늘어나야 투자열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와 성과의 선순환이 구축돼야 바이오ㆍ제약부문에 보수적이었던 투자자들의 시각도 개선되고 제약사들도 크레딧 시장이라는 확실한 자금 창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연이은 회사채 발행 성공…AA급 제약사 출현 가능성도 거론
제약업계를 향한 크레딧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지난 2분기 들어서면서다. 4월에 대웅제약이 성황리에 회사채를 발행하며 신호탄을 쐈다.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 30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모집금액(1000억원)의 3배 규모다. 회사는 조달한 자금을 충북 오송공장 신설에 쓸 예정이다.
한 달 뒤엔 녹십자가 회사채 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설비투자 자금 1000억원을 모집하는데 5700억원의 자금이 유효수요로 들어왔다. 회사는 발행금액을 1500억원으로 늘렸다. 회사채 신용등급은 AA-로 국내 제약사들 가운데 가장 높다.
비슷한 시기 한미약품(A+)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 올랐다. 국내 신평사들은 대형 기술수출 계약으로 R&D 투자가 수익성과 재무안정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가시화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제 제약사도 AA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거론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말 '제약산업 신용등급 상한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리포트를 통해 R&D 역량·재무 안정성‧영업력‧시장 지배력 등에 따라 제약사에 AA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제약사의 신용등급 상한을 A+로 정했던 2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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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시각은 한미약품의 '잭팟' 이후 다소 누그러졌다. 이제는 제약시장의 성장전망과 기업들의 R&D 투자현황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국내 대형 제약사 13곳의 합산 R&D 비용은 65%가량 증가했다. 정부의 육성 의지도 강하다.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인구고령화‧각종 의약품의 특허만료 등으로 제약산업이 계속 커지고 있다”며 “R&D 및 마케팅에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산업 특성상 제약사들이 자주 회사채 시장에 등장해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용등급이 오른다는 것은 업계에도 여러 모로 긍정적이다.
현재 바이오 관련 기업들은 대부분 사모펀드(PEF), 벤처투자기관 등으로부터 기업공개(IPO), 전환사채(CB) 발행 같은 지분투자(Equity)를 받아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대형 제약사들조차도 직접 금융시장에 명함을 내미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신용등급이 오르면 외부자금 조달 창구가 넓어지고 조달비용도 크게 낮출 수 있다.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대출의 문턱도 낮아진다.
아울러 영업활동에 있어서도 좋은 일이다. 대외적인 평판이 올라가면서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거래 관계나 의약품 판매허가를 받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란 전망이 많다. 특히 신약 개발이 한창인 곳들은 기술 수출에서부터 해외 판매승인까지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성공사례 늘려 보수적 기관투자자 '신뢰' 확보
문제는 신용등급 상향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신평사들의 평가기준을 보면 대형 제약사들의 등급상향 조건은 사실상 하나다. R&D와 투자성과가 수익성뿐만 아니라 재무안정성까지 개선시키는지 여부다. 한미약품의 신용등급이 오른 것도 이 기준을 충족한 요인이 컸다.
다른 제약사들 중 이만한 성과를 낼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시각이 크다. 신약개발은 오랫동안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다. 개발에 성공해 판매승인까지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가장 큰 제약시장인 미국에서 판매승인을 얻은 국내 의약품은 지금까지 단 5개뿐이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High return)' 성격이 강한 영역이다.
녹십자를 제외하면 제약사 대부분이 여전히 전문의약품 중심의 사업구조다. 오랫동안 신약개발과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보다는 기술수입(라이선스 인)과 완제품 구매에 초점을 뒀다. 글로벌 제약사들과 거래관계를 맺는 영업력이 핵심역량이다. 이런 그들이 최근 R&D를 강화했다고 해서 전혀 다른 성격인 신약개발에서 곧바로 성과를 내긴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몇몇 제약사의 신용도와 평판이 개선된 것만으로 제약업 자체의 신용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이르다”며 “좀 더 업체별 투자성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을 더 끌어내기 위해선 결국 좀 더 많은 성공사례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은 한미약품 사례에 맞춰 여러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성공해 ‘수익성‧재무구조 개선→투자자금 확보→또 다른 신규투자’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드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다수의 회사가 여러 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제약사들의 자금조달 전략도 이같은 변화가 뒷받침돼야 바뀔 수 있다. 현재 200곳이 넘는 제약사들 중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은 10여곳 정도다. 회사채를 발행하는 곳은 더 적다. 선두권인 유한양행이 회사채를 발행한 지 10년이 넘었다. 한미약품, 대웅제약, LG생명과학 정도가 가끔 얼굴을 내미는 게 전부다. 발행금액도 1000억원을 넘기는 걸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제약업계의 회사채 발행 시장은 작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자는 “그동안 제약업계에선 몇몇 기업만이 2~3년에 한 번꼴로 조금씩 회사채를 발행한 게 다였다”며 “만약 투자성과를 바탕으로 좋은 등급을 받고 발행에 나서는 곳이 늘어난다면 시장에서도 그만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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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6월 28일 16:2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