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산업 학습과 네임밸류 올리기 투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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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전기자동차사업의 밑그림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해말 전장사업팀을 출범시켰지만 뚜렷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던 삼성전자다. 올 하반기에 들어서자 중국 BYD에 50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이어 3조원 이상 들여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자동차부품 자회사인 마그네티 마렐리(Magneti Marelli) 인수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회사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삼성전자가 유럽과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인수합병(M&A) 큰 손으로 부상한 것만은 틀림없다.
삼성전자가 전기차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은 신중하면서도 과감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시장과 관련업계의 전망이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그 방식은 다른 모습을 띨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선 BYD의 사례처럼 직접 투자보단 중국업체에 대한 간접 투자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전기차 생산 세계 1위 국가로 발돋움했다. 중국 내 전통적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IT 기업들도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전 세계 관련 인력들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중국은 세계 전기차시장 블랙홀이 됐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로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산 전기차를 구매하게 되면 차값의 상당 부분을 보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외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배터리산업에서도 국내 기업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가 만드는 전기버스용 배터리 ‘니켈코발트망간(NCM)’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중국 회사들이 주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만을 전기버스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에서의 전기차 시장 성장성을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만큼 내재화의 단계도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직접 투자가 아닌, 지분을 매입하는 간접 투자 방식을 택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BYD와 파트너십을 맺게 되면 전기차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학습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앞으로 보다 명확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자동차 반도체시장은 5년 안에 30% 가까이 커지고, 차량용 디스플레이업계도 매년 11% 성장하는 등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 당장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중국업체들이 새로운 부품 수요처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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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 등 전통적 자동차 강국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M&A를 통한 네임밸류 확대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직접 육성하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자동차 시장에서 트랙레코드가 없는 만큼 이름 있는 기업을 직접 인수하는 게 기술력 확보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삼성전자 이름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 추진과 관련해 삼성전자에선 부인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어느 정도 확실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이 딜(Deal)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자동차부품 M&A 시장에서 인수자로서 이름을 계속 올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사업부 자체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한다. 기업문화가 달라 화학적 시너지를 내기가 쉽지 않고, 적자 사업들이 많아 이를 컨트롤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자동차사업에선 브랜드가 곧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화학적 시너지를 기대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들의 주인들이 계속 바뀌어도 그 브랜드들은 유지되고 ‘역사’가 곧 경쟁력이 된다”며 “삼성전자가 향후 추진할 M&A에서도 ‘삼성’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기 보단 기존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간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자동차분야 CEO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삼성그룹의 관심을 방증한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부품사업으로 선긋기를 하면서 완성차진출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게 됐다"며 "토요타 리콜사태와 폴크스바겐 사태에서 보듯 완성차사업은 리스크가 크고, 또 이렇게 선긋기를 확실히 해야 부품업 진출 이후에 고객들을 확보할 때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시장 상황과 회사 사정에 따라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경험이 없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학습과 외형 확장이라는 투트랙이 가장 현실적이고, 또 가장 '삼성'다운 전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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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8월 04일 11:2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