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경영권 없는 거래 기피
주선자, 트렌드 변화 대응 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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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국내 M&A 인수금융 시장에 처음 조(兆)단위 리파이낸싱(Refinancing) 거래가 등장했다. 투자대상 회사는 3년 평균 영업이익률 20%, 상각전영업이익(EBITDA) 3000억원을 기록했다. 대출만기는 4년, 금리는 약 7%였다. 투자자 모집 목표금액 2조2000억원에 3조원가량의 신청이 들어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딜라이브 얘기다.
이때만 해도 인수금융 투자는‘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선순위·중순위 대출이라 투자기업이 망가지고 사모펀드(PEF) 지분 투자가 손실나도 대출금 회수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한은행이 주도하는 리파이낸싱에 국민연금·새마을금고 등도 참여했고, 투자하겠다는 금융회사들의 수는 계속 늘었다. 인수금융 규모만 2조원이었던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이나 4조원대 홈플러스도 금융회사들이 서로 투자하겠다고 나서면서 무리없이 소화했다.
2016년 딜라이브 인수금융은 시장을 다시 흔들었다. 회사는 같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은 싸늘해졌다. 산업 트렌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자 연체와 만기 연장, 부도위기도 겪었다. MBK파트너스를 비롯해 대주단 간사은행인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꼬박 6개월을 매달려 리파이낸싱에 겨우 성공했다. 2년 후 투자 회수가 가능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그래도 시간을 벌자는 생각에 투자자들이 연장에 동의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더이상 인수금융을 수익률 안전지대로 여기지 않고 있다. LG실트론,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 딜라이브로 이어진 위기에 피로감이누적됐다. 담보 자산만 따져 보는 걸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변동성이 심한 산업은 아예 인수금융 투자 대상에서 밀려났다. 거래 구조, 투자회수 방안 등 따지는 조건이 늘었다.
PEF도 투자 흐름을 전환하고 있다. 경영권이 없는 거래는 기피한다. 수조원을 웃도는 공격적인 M&A도 감소세다. 시황을 타는 산업보다 현금흐름이 꾸준한 소비재 회사들만 즐겨 찾는다. 일부 PEF는 O2O·IT 등 성장성이 큰 산업에 모험을 걸고 있다. 투자금액은 수백억원 정도로 그만큼 인수금융 공간은 좁아졌다.
이런 변화 앞에 인수금융을 주선하는 시중은행이나 국내 증권사들은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낮은 금리와 PEF에 우호적인 조건을 내미느라 바쁘다. PEF들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를 줄세워 이자와 수수료를 깎고 있다. 어렵사리 주선사 자리를 꿰차도 투자자 모으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조건도 느슨하고 금리도낮기 때문이다.
조건을 바꾸긴 힘드니 주선사는 수수료를 포기하고 금리를 높여 투자자를 모으는 방법을 택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일부 PEF들은 여러 곳에서 금융 주선 제안을 받아놓고서 금리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면서"울며 겨자먹기로 주선을 맡아도 투자자가 원하는 금리 수준을 맞추려면 수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은행들을 위시한 인수금융 주선사들은 정작 트렌드 변화를 읽는 데는 인색하다. O2O 산업과 같이 무형자산 기업에 대한 인수금융에 대한 준비도 부족하다. 유형 담보 없이 인수금융 대출이가능한 금융회사가 있을 지도 의문이다. 특히 은행들은 BIS비율과 같은 자본 규제에 묶여 할 수 있는 거래마저 줄어든다.
다른 관계자는"일부 은행들이 실적이 잘 나왔다며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 다양한 인수금융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면서"은행은 대출 심사 과정 때문에 인수금융 집행 속도도 느려살아남기 더욱 어렵다"고 했다.
그나마 작년까지는 버틸만했다. PDF와 자본구조재조정(리캡) 등으로 틈새 시장을 개척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PDF는 레드오션이고 리캡 수요도 소강 상태다. 올 하반기는 예정된 대형거래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기대했던 넷마블의 플레이티카(Playtica)인수도 불발됐다. '선순위-중순위'구조와'선순위는 은행이, 중순위는 증권사가' '네 딜은내 딜, 내 딜은 네 딜'이라는 인식은 호(好)시절에나적용됐다. '제살깎아먹기'식 경쟁만 이어가다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휘둘리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