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자금 여력·오너가 이사회 등재로 사업 확장 가능성↑
"바이오 역량 강화 위해 국내외 추가 M&A도 추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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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이 LG생명과학 합병을 통해 그룹 바이오 사업을 총괄한다. LG생명과학에서 전담해 온 그룹 바이오 사업을 재무 여력이 충분한 LG화학에 일원화한 후,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LG화학은 12일 공시를 통해 계열사 LG생명과학의 흡수합병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날 이사회(LG화학)와 주주총회(LG생명과학)를 거쳐 내년 1월 1일을 목표로 합병이 추진된다.
LG그룹은 바이오 사업 진출은 앞섰지만, 그룹 차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삼성·SK·CJ 등 타 그룹보다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합병을 통해 그룹 바이오사업이 재무 부담에서 벗어나 R&D 투자 등 사업 확대에 나설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합병 발표 이후 투자자를 대상으로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호영 LG화학 사장(CFO)은 "LG생명과학과의 합병 키워드는 신약 개발"이라며 "글로벌 관점에서도 성공한 신약개발 사례를 만드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합병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단기 현금창출 위주의 백신·바이오시밀러 중심 사업 구조에서, 신약 개발 투자 확대를 통한 장기 전략으로의 변화로 풀이된다.
그간 비석유화학 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해온 LG화학 입장에서도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한 걸음 더 나서게 된다.
LG화학은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제품 외에도 LCD 편광필름·2차 전지 사업 등 석유화학 외 사업부문에 투자를 늘려왔다. 하지만 각각 디스플레이 업황 악화와 중국의 배터리 인증 문제 등으로 수익성 악화를 겪어왔다. 올해 초 팜한농을 인수하며 구축한 '그린 바이오'(농업·식량 부문), 수처리 및 환경부문 바이오 사업인 '화이트 바이오'에 이어 이번 합병을 통해 '레드 바이오'(의료 및 제약)부문 세 가지 사업에서 역량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LG화학은 이날 합병 이후 연간 3000억원~5000억원 투자를 통해 적극적인 사업 드라이브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그간 LG생명과학이 투자해온 액수(약 1300억원)에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LG화학은 "바이오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해 2025년 매출 5조원대의 글로벌 사업으로 키우겠다"고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그간 LG화학이 목표해온 글로벌 종합화학회사인 바스프, 다우케미칼, 듀폰 등도 농화학·바이오 분야 매출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 역량을 집중 중이다”라며 “올해 초 팜한농 인수에 이어 LG화학이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은 2002년 LGCI(현 ㈜LG)에서 지금의 LG생명과학을 분할해 바이오사업을 전담시켰다. 하지만 그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바이오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지원도 다른 신사업에 비해 적었다. LG생명과학의 최대주주인 ㈜LG가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1123억원을 투입한 게 전부다. 지난 2009년부터 충북 오송공장 신축투자를 진행하면서 재무 부담도 증가했다. 올해 7월엔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재무부담을 이유로 회사의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한 단계 강등하기도 했다. 투자 부담은 커지는 상황에서, 계열사내에서 홀로 자금조달을 맡기도 쉽지 않아졌다.
한 크레딧 연구원은 "그동안 LG생명과학은 주로 사모사채를 발행해 자금 조달을 해왔는데, 연구개발에 자금은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할 상황에서 등급이 하향되면서 고민이 컸었다"라며 "증자를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지주사인 ㈜LG 보유지분이 많아 부담이 있다보니 LG화학으로 이동시켜 고민을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합병을 통해 LG화학으로 바이오 사업의 무게 축이 변화하면서, 향후 추가적인 사업 확장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LG화학은 올해 상반기까지 석유화학부문의 업황 호조를 바탕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이익을 기록해왔다. 이를 통해 2분기 기준 약 1조7000억원에 달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매 분기 약 6000억원의 현금창출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초엔 대주주 일가인 구본준 (주)LG 부회장이 등기 이사로 옮겨와 책임을 맡기도 했다.
추가적인 M&A 참여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정 사장은 "바이오 분야에서 국내외 업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추가 딜(Deal)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라며 "다만 인수한 팜한농을 안정화시켜 글로벌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컨퍼런스 콜을 통해 덧붙였다.
한 제약·바이오 담당 연구원은 "LG생명과학이 우수한 R&D 인력을 바탕으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제품군들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계획대로 LG화학의 자금력이 뒷받침된다면 예상보다 빠른 성장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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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9월 12일 11:0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