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들, 모바일 집중·수처리 필터 확보 등 다각화로 활로 찾아
사내 우선순위도 뒤로·예정한 공장 증설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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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전자소재 사업 비중이 앞으로 상대적으로 축소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동안 너무 IT에 집중된 사업을 해왔고, 성과에 너무 안주하지 않았나 반성도 듭니다…지금 생각하면 사업부 이름 자체부터가 IT분야에 치우친 전략을 수립하게끔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12일 열린 LG화학과 LG생명과학 간 합병 발표 컨퍼런스콜. 합병 이후 펼쳐질 청사진 제시가 끝나갈 무렵, 정호영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은 '현재'의 고민을 투자자들 앞에 털어놓았다. 정보전자소재 사업의 부진한 성과에 대한 토로였다. 이 사업부는 LCD 디스플레이에 투입되는 편광판·유리기판 등 디스플레이 소재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정보전자사업부는 그간 비화학부문 강화를 내세워온 LG화학의 대표 사업으로 꼽혀왔다. 2007년 흑자전환한 이후, 지난해까지 꾸준히 실적을 창출해온 '캐시카우' 사업이다. LG화학은 설비 증설을 늘려 세계 선두권 수준(시장 점유율 25%)까지 자리 잡았다.
이제 위상은 이전 같지 않다. 올해 영업적자로 돌아선 이후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회사는 2분기 실적발표에서도 올해 내 흑자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밝히기도 했다. 각 증권사들은 “정보전자‧전지 등 비석유화학 부문 사업구조에 부여했던 프리미엄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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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전방 산업인 LCD가 더 이상 '성장성'을 보이지 못하는 점이 근본고민이다. 중국의 공격적 진입으로 LCD 디스플레이의 가격 인하 경쟁은 이제 중·장기적 '상수'가 됐다. 이로 인한 단가인하 압력은 소재업체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받아온 LG디스플레이도 주력 모델을 LCD에서 편광판을 필수로 하지 않는 OLED로 선회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니토덴코(Nitto Denko), 스미모토케미칼, 국내 롯데첨단소재 등 경쟁사들은 앞다퉈 증설 계획을 밝히고 있다. SAPO, Sunnypol 등 중국 현지 기업들도 저가 시장 중심으로 규모 확대에 나서면서 경쟁환경은 더 치열해졌다. LG화학은 올해 계획했던 중국 난징 공장 증설을 재검토하는 등 사업 확장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은 글로벌 업체들이 2000년대 초 업황 부진·공급 과잉이라는 '성장통'에 빠진 시기에 적극적으로 규모를 키웠다. 특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던 일본 업체들이 엔화 가치 상승 등 사업환경 악화로 수출 둔화를 겪으면서 정체기를 맞았다. 이 같은 공백기에 LG화학등 국내업체들은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 세계 선두권 회사까지 성장했다.
글로벌 업체들은 '맞불' 대신 새로운 신사업 발굴로 방향을 선회했다. 일본의 니토덴코가 대표적인 예다. 2007년 회사 매출의 약 80%를 차지해오던 편광판 사업에서 부진이 시작되며 위기가 시작됐다. 니토덴코는 당시 국내 업체들이 점유율을 끌어올린 대형(TV) 편광판 대신 중·소형(모바일) 부문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니토덴코는 축적한 중·소형 부문 기술력으로 애플의 아이폰 디스플레이향(向) 편광판 공급을 담당하면서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기존 기술력을 활용한 사업 확장에도 나섰다. 수처리(RO필터) 등 IT 외 분야에도 역량을 집중했다. 현재 니토덴코는 수처리 부문에서 다우케미칼, 도레이케미칼과 함께 세계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LG화학은 과거 '추격업체'에서 이제 저물어가는 산업을 마주하게 됐다. 글로벌 업체들이 보인 해법을 '벤치마킹'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4년 약 1500억원을 들여 미국 수처리업체 '나노H2O'를 인수해 수처리 사업을 강화했다. 올해 초 약 800억원을 들여 LG하우시스에서 자동차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점접착 필름 사업부를 인수했다. 컨퍼런스 콜을 통해서도 “보유하고 있는 소재와 재료에 대한 역량을 활용해 IT 이외 산업용이나 에너지, 자동차 분야로 전환해 성공사례들을 다시 써보겠다”며 다각화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시장에 다시 알렸다.
하지만 이전 같은 입지를 되찾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화학 사업 중에서도 2차 전지, 바이오 사업에 비해 우선 순위도 뒤로 밀렸다. LG화학은 바이오부문엔 연간 50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전지부문엔 2018년부터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등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했지만, 아직 전자소재사업에 대한 계획은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 ‘출구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화학 담당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감가상각이 끝난 노후 설비들을 폐쇄해나가면서 중국쪽으로 생산 설비를 집중해 고객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서야 할 상황"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 세대를 풍미했던 산업이 '황혼기'를 맞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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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9월 13일 17:5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