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안내도 된다"…주관사 유효경쟁 위해 '들러리'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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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상당수 기업들이 M&A를 통한 회생을 모색하고 있지만 실제 성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매각주관사가 매각절차를 주도하며 실질적인 인수후보들을 찾기보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흥행'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존 다른 거래에 참여했던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입찰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거나, 업종 연관성이 전혀 없는 기업에게 인수의향서(LOI)만 제출해 달라고 부탁하는 식이다.
현재 회생기업의 매각주관은 국내 4대회계법인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한 의료재단은 알짜 자산인 A병원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중순 매각주관사가 인수후보자를 대상으로 LOI를 접수한 결과 10곳이 넘는 기업들이 몰렸다. 예비입찰에 참여한 한 건설회사는 매각주관사의 요청으로 LOI만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건설사는 업무연관성이 없는 병원을 인수할 요인도, 인수의지도 없지만 단순히 주관사의 요청으로 참여하게 됐다. 이 업체 한 관계자는 "매각주관사에서 딜이 있을 때마다 들어와(참여해)달라고 요청한다"며 "본 입찰에 참여할 계획은 없으며 기존에 법정관리 건설사의 매각 때와 같이 예비입찰에만 참여할 계획이다"고 했다.
올해 세 차례 매각을 추진한 B열병합발전소 매각주관사는 평소에 친분 있던 PEF 운용사에 LOI만 접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PEF 운용사는 회사의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해 인수전에 뛰어들 계획이 없었으나, 주관사의 간곡한 부탁으로 참여하게 됐다. 당연히 본 입찰에는 불참했다. 인수를 검토했던 업체들 또한 높은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느껴 예비입찰참여를 꺼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첫번째 매각 예비입찰엔 5곳이 넘는 기업들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본 입찰 결과는 단 2곳만 참여, 2곳 모두 법원이 정한 최저입찰가를 넘지 못해 유찰됐다. 두 번째 시도에선 모기업과 묶어 패키지 매각을 시도했으나 6곳의 LOI제출 기업 중 본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단 1곳이었다.
현재 M&A를 추진하고 있는 한 건자재 업체의 매각주관사는 한 PEF운용사에 입찰보증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니 예비입찰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예비실사에 돌입하는 기업들은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증금은 약 1000만원 남짓이다.
주관사가 예비입찰 참여를 부탁한 운용사는 기존 회생기업 매각에서 수 차례 거래를 해왔던 곳이었다. 다른 후보업체는 입찰보증금을 납부하고 인수의향을 밝힌 상태였다. 인수의향서 마감시간 직전까지 인수의향을 밝힌 업체는 단 1곳이었다. 주관사의 이같은 요청은 예비입찰에 1곳만 참여하게 될 경우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본 입찰은 내달 초로 예정돼 있다. 인수의향을 밝힌 두 업체가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회생기업의 예비입찰에 수많은 업체들이 참여하지만 정작 본 입찰 결과는 부진한 것도 주관사들의 '성과내기 식' 흥행전략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개경쟁입찰의 성립요건을 맞추기 위해 후보업체 몇 곳을 '들러리' 세우는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올해 수차례 매각을 추진한 삼부토건과 삼부토건의 자회사 삼부건설공업, 경남기업과 자회사인 수완에너지, STX건설 등 모두 예비입찰에선 '흥행'이 예고됐지만 본입찰 성적은 '저조'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회생기업의 매각에선 법원이 정한 공개경쟁 입찰요건을 맞추기 위해 업종간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업체를 들러리 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예비입찰에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하지만 실질적으로 인수의지 갖고 인수를 추진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것은 이 같은 무리한 흥행전략도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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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0월 03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