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법인지급결제, 9년째 표류 중인 까닭은
입력 2016.11.01 07:00|수정 2016.11.01 10:54
    [Weekly Invest] 2007년 법적으로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했지만
    은행권 반대 부닥쳐 금결원 규약으로 제한 중
    "2015년 내 해결하겠다"던 금융위는 논의 중단
    •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을 둘러싼 논의가 9년째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해관계자 간 대립이 첨예한데, '심판'인 금융당국이 손을 놓은 상황이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는 법인 자금의 지급결제 업무가 불가능하다. 직장인들이 증권사 계좌를 급여통장으로 직접 지정할 수 없는 이유다. 증권사 계좌로는 전자상거래 결제 대행(PG)과 자금관리서비스(CMS) 등의 업무가 아예 불가능하고, 인터넷뱅킹과 점포 송금 등은 은행 연계망을 거쳐 가능하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에 대해 은행권의 반대가 완강하다. 불안정한 증권업 특성 상 유동성·결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안정성도 뛰어날 뿐더러 중앙은행으로부터 긴급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증권사는 중앙은행과의 연계가 없어 지급 시점과 결제 시점의 차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정책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있다. 산업계 증권사가 그 대상이다. 금융지주가 아닌 대기업그룹 소유 증권사의 경우, 오너 일가가 고객의 수신금을 사금고 내 비자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해놨다는 입장이다. 한국증권금융(증금)에서 증권사가 맡겨둔 예탁금의 5~10%를 담보로 대출해주는 예탁금담보대출이 대책 중 하나다. 증금에서 2조5000억원 한도로 자금을 빌려주는 긴급자금여신 제도와 상대 결제은행이 당일 상환 조건으로 한도의 100%까지 대출해주는 결제대행 은행 1종 대출도 있다.

      금산분리 역시 관련 법령에 의해 철저히 제한돼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산업계 증권사는 대주주를 대상으로 직접적인 신용공여가 불가능하다. 또한 고객 예탁금은 전액 증금으로 이체된다. 증금이 직접 관리하므로 증권사가 유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증권사에 법인지급결제를 허용하려면 금융결제원(금결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금융회사의 공동 지급결제망을 운영하는 금결원은 내부 규약을 통해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를 제한하고 있다. 금결원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20여개의 은행이 추천한 인사로 구성돼있다. 증권사가 은행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셈이라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은행이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money shift)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급여통장은 은행이 '저원가성 핵심 예금'으로 관리하는 금융상품 중 하나다. 올 3분기 시중은행의 깜짝 실적에는 이자이익의 기여가 컸다. 현재 시중은행 급여통장 금리는 0.1%,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금리는 1.4~1.5%다.

      금융 소비자의 혜택 극대화와 편의성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은행·증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법인지급결제가 증권사에도 허용되면 경쟁이 생기므로 그 혜택이 금융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겠느냐"면서 "금리부터 결제 편의성까지 개인·법인 고객이 느끼는 편익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칼자루를 쥔 금융위원회가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15년 증권업계의 강력한 요구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연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올해 금융위 사업계획에서는 전년도에 포함됐던 '법인지급결제 허용 위한 협의체 구성 조항'이 빠졌다. 현재 금융위는 은행·증권사 간 타협이 불가능하다며 논의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논의는 2006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자본시장법에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조항(40조4항)을 포함했다. 그러나 제정안이 2007년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은행권이 반발했고, 개인 한정 지급결제 허용으로 권한이 축소됐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는 "증권사의 법인 대상 허용은 차후 고려하겠다"며 논의를 일단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