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아니었더라면...' 두산밥캣의 반쪽짜리 성공
입력 2016.11.16 07:00|수정 2016.11.16 09:26
    [취재노트]
    • "두산밥캣은 여러모로 운이 없었죠" 두산밥캣 기업공개를 지켜본 어느 IPO 실무진이 한 말이다. 경쟁사에 몸담고 있지만 같은 일을 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유는 이렇다. IPO 시장의 냉각기가 한창인 시점에 상장을 진행했다.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은 바람에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수가 저조했다. 결국 공모가와 공모주수를 수정했다. 수요예측일엔 최순실게이트를 해명하기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가 있었다. 일반청약일엔 미국 대선이 겹쳤다. 주식시장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셈이다.일반청약 경쟁률은 저조했다. 상장 일정을 두 번씩 진행하며 고생은 두 배로 했지만, 주관사단은 천억원대 실권주를 떠안게 됐다. 그의 말처럼 올해 이렇게 운이 없었던 IPO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운'의 문제였을까.

      복기해보면 두산밥캣은 상장일정을 시작할 때부터 다양한 이유로 시장의 지적을 받았다. '시장'탓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지만 발행사와 주관사단도 의문스러울만큼 고집을 부렸다.

      두산그룹은 올 초 재무구조개선을 목적으로 두산밥캣 IPO카드를 꺼냈다. 그룹 전체 순차입금은 약 10조원 수준으로, 구주매출을 통해 이를 낮추겠다는 전략이었다. 밥캣의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그룹에 유입되는 금액이 커지는 구조다. 비교기업으로 캐터필라와 고마쯔를 선정해 20배 이상의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했고 기업가치를 5조원으로 도출했다. 구주 매출시 그룹에 1조원 상당이 유입될 것을 계산한 가격이다. 지난해 매출액 4조원, 영업이익 3860억원을 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시장에선 두산의 논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기업가치가 높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두산그룹은 콧대를 낮추지 않았다. 그룹이 원하는 자금을 확보하려고 높은 가격에 상장을 강행한다는 강도 높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관사단이라도 시장과 회사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정작 회사의 손을 들어주는데 급급했다. 수요예측 실패 후 밥캣의 구주매출 구조와 가격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도 주관사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대기업 IPO 특성상 주관사가 발행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만큼 많은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은 있다. 하지만 밥캣 주관사단이 두산그룹의 의지를 꺾지 못했는지, 아니면 꺾지 않았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주관사를 설득하기보다 계산기를 먼저 두드린 게 아닌가하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주관사인 JP모건과 한국투자증권은 각각 35% 인수 물량을 배정받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물량 부담이 있는 대형 IPO는 대표 주관사가 20% 내외를 인수한다. 대표 주관사의 인수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두산밥캣은 공모가에 따라 수수료 차이가 벌어진다. 두산밥캣의 기본 수수료는 70bp으로 낮은 수준이다. 인수 물량이 크고 공모가가 높아야 주관사단에 유리해진다. 두산밥캣이 처음 시장에 제시한 공모가(4만1000원~5만원) 기준 대표주관사가 받은 수수료는 49억~60억원이다. 공모가 3만원으로 진행하면서 수수료는 22억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이런 배경을 뒤로 두산밥캣은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주관사단의 노력에도 불구, 해외 투자자의 청약 요청이 고작 한자리 수에 그쳤다. 자금조달을 위해 그룹의 마지막 유력 계열사를 내놓은 두산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결국 두산밥캣은 상장을 철회했다. 한 달만에 공모가와 공모규모를 대폭 수정해 다시 상장을 진행했지만 이미 시장에선 기대감이 한풀 꺾인 상황이었다.

      이벤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두산밥캣의 일반 청약일은 지난 8~9일로 미국대선과 날짜가 맞물렸다. 최종 경쟁률은 0.29대1을 기록해 천억원대의 실권주가 발생했다. 당시 주관사 측은 "트럼프 후보의 당선 확정으로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졌고, 이로 인해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부진의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엔 트럼프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시장에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부진의 원인을 트럼프 탓으로 돌렸다.

      트럼프가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이 시장에 쏟아져나오자 두산밥캣과 주관사의 태도도 뒤늦게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 확정 후 건설장비 업체 캐터필러 주가가 7.7% 오른 상황이었다. 트럼프가 두산밥캣을 테마주로 만든 것이다. 대선 결과에 따른 주관사단의 대응 전략이 있었다면 청약 미달이라는 오명없이 일찍이 수혜를 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운이 없었다'는 타 증권사 실무진의 동정이 무색할만큼 지금 두산밥캣은 '천운'을 누리고 있다. 두산밥캣은 지난 14일 증권발행실적보고서를 통해 실권주가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청약미달로 발생한 실권주는 기관투자자에게 모두 팔린 것이다. 천억원의 비용을 들일 뻔했던 주관사단의 어깨도 가벼워졌다. 두산밥캣의 최대주주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날 연중 최고가인 1만1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트럼프의 당선만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발행사나 주관사의 의도나 계획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운'에 좌우됐다. 그렇게 시장에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