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주의 강화로 국내 업체 중국 사업 불투명
관 차원 해결 기대한 업체들, 정국 마비에 사실상 체념
-
중국 한한령(限韓令)의 찬 바람이 전기차 배터리 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의 '규제 장벽'이 공개되면서 올해 내 정상화를 기대했던 LG화학과 삼성SDI는 충격에 빠졌다. 올해 내 중국 설비 신설 등 가시적 진입 성과를 보이겠다던 SK이노베이션은 연내 진입 계획을 백지화했다.
사드 배치, 한일 군사협정 등 정치·외교 갈등으로 중국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기업 차원의 대응은 점차 어려워진 형국이다. 최근까지 정부 차원의 조정을 기대했던 기업들은 마비된 정국에 체념한 모양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내년부터 시행될 '전기차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 수정안 초안을 22일 공고하고 한 달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새 인증 공고안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규범 통과를 위한 기준으로 리튬이온전지의 연간 생산능력을 연간 8GW 수준까지 갖출 것을 요구했다. 기존 0.2GW 수준 대비 40배 높은 수치다. 기존 1차~4차 인증을 통과한 배터리 업체들도 다시 기준에 맞춰 인증을 신청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규범 조건을 신설한 후 총 4차례 인증 심사를 진행했다. 모범 기준을 충족한 업체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향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업체들도 인증 심사 통과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번번히 탈락해와 투자자들의 우려는 커졌다. LG화학과 삼성SDI 모두 올해 내 5차 인증 통과로 중국내 사업 본격화를 기대했지만, 예상외의 고강도 규제안에 충격에 빠졌다.
사실상 국내 업체들의 중국 내 사업이 불가능해졌다는 비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규제에 맞춰 증설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고, 중국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 리스크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커진 상황이다.
업계에선 연간 8GW 수준의 생산 설비량 증설은 국내업체가 충족하기 불가능한 기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전 세계 배터리 출하량이 12GW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소형 업체들의 퇴출은 불가피할 예정이다. 현재 중국 내에서도 BYD의 설비(10GW)만 규범 기준에 해당된다. 업계에서는 8GW 설비를 갖추는 데 약 1조7000억원의 투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화학의 난징 공장, 삼성SDI의 시안 공장은 연간 3GW, 2GW 규모 배터리 공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설 투자 비용 역시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증설 이후에도 통과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 산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 체류하면서 업체들과 미팅을 통해 분위기를 들어보면, 중국 정부가 기존 8GW에서 의견 수렴을 통해 5~6GW까지 완화해줄 것이란 기대감은 어느정도 갖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중국업체들에게 자국업체에 대한 보조금지급 등 유인책은 유지하고, 외국업체들에 대한 진입장벽은 최소 2년간 유지해주겠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고 있어 국내 업체의 보조금 수혜는 사실상 물 건너 간 상황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당장 국내 업체들은 '출구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5차 기준안이 확정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본 이후 구체적 전략을 세울 계획이다. 중국 외 미국·유럽 완성차 업체로의 공급망 강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대안 사업 발굴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곳이 중국이 유일한 점을 고려했을 때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기준안에 대한 보도 이후 LG화학과 삼성 SDI의 주가는 각각 약 7%, 4%가까이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은 연내 진출 계획을 접은 후 보수적 접근에 나서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가시적 성과를 보이겠다고 밝혔는데, 사드문제 등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국내업체가 중국 사업 진행하기가 점차 어려워지다보니 보수적으로 진입으로 내부 방침이 바뀌었다"며 "중국 시장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길게 보자는 전략으로 접근할 계획" 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중국의 기준 강화 움직임에 정부 차원의 대응을 기대해 왔지만, 마비된 정국 하에서 체념한 목소리도 나온다.
업체 한 관계자는 "처음 1차 기준안때는 권고 사항 정도로 이해를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가며 중국 정부의 국내 업체들에 대한 보호 장벽으로 공고화 된 상황"이라며 "기업들 역량도 중요하지만 정부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서 투자도 하고 시장기회가 넓어지면 중국 경쟁력도 좋아지지 않겠냐고 설득을 해줘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른 배터리 업체 관계자도 "사드 배치, 한일 군사협정 등 민감한 정치·외교 이슈가 지속적으로 여러 산업에서 중국이 견제를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보니 정부 입장에서도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국내 상황이 혼란스러워 배터리 규제 문제를 해결해달라 정부 부처에 요구하기도 주저된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1월 24일 14:5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