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IPO 공모가격이 하루 만에 변경된 이유
입력 2016.11.29 07:00|수정 2016.11.29 07:00
    • 기술특례상장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는 신라젠이 상장 과정에서 주관사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거래소와 발행사의 의견을 균형있게 조정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회사에 대한 관심보다 상장 과정에서 들리는 잡음에 시장의 관심도 분산됐다.

      신라젠의 공모규모는 최소 1500억원으로, 기술특례상장을 진행한 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올해 코스닥 상장 기업 중에서도 1000억원 이상의 공모를 진행한 기업은 3곳에 불과해 대어로 꼽히기도 했다. 또 신라젠은 장외시장에서 이미 1조원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신라젠이었지만 증권신고서를 낸지 하루만에 공모가를 변경했다. 이는 그간 IPO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특히 공모가는 주관사와 발행사가 가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내용으로 평가받는다.  발행사 뿐 아니라 기업가치를 컨설팅한 주관사의 신뢰에도 타격이 가는 일이기 때문.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신라젠 자체보다 상장과정에서 주관사와 발행사, 거래소 사이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를 더욱 주목하게 됐다.

      신라젠이 기술성 평가를 받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주관사로 선정 후 컨설팅에 따라 기술성 평가를 진행했다. 신라젠이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펙사벡'에 대한 기술은 평가 최고등급인 AA를 받았다.

      거래소의 만족도도 높았다. 지난 9월 12일 예비심사를 청구,  30영업일만에 거래소의 승인을 받았다. 거래소의 예비심사 기간 기준이 45영업일인 점을 감안하면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다.

      문제는 지난 1일 발생했다. 신라젠과 주관사가 이때 시장에 공개한 공모가는 1만7000원~2만500원. 공모가 하단이어도 상장 후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어간다. 이 가격은 예비심사 당시 신라젠 측이 거래소에 공개했던 가격보다 높았다.  즉 예비심사가 통과한 이후 신라젠과 주관사가 장외주식 가격의 상승분을 반영해 공모가 밴드를 높였던 것. 주관사 관계자는 "장외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신라젠의 주식수가 많아 시장가격으로 참고해도 무방한 가격"이라고 언급했다.

      거래소는 증권신고서를 확인한 후 "심사 과정에서 논의됐던 가격과 다르다"며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거래소가 주관사-발행사 합의 하에 정한 시장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 과정에서 강력하게 의견을 밝힌 것은 거래소가 느낀 부담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연간 600억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기록한 기업이 기술특례제도를 통해 최소 1조원의 기업가치를 받는다는 건 시장에 큰 무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거래소의 우려였다. 작년 같은 시기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더블유게임즈가 상장 직후 주가가 반토막나면서 IPO시장을 마비시켰던 점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었다. 더블유게임즈의 공모자금은 2700억원으로, 상장 직후 시가총액 1조원을 넘기도 했다. 25일 기준 더블유게임즈의 시총은 5300억원이다.

      거래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주관사는 공모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신라젠에 전달했다. 휴가를 떠났던 신라젠 직원 일부는 이날 다시 회사로 돌아와 급히 재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공모가 밴드는 1만5000원~1만8000원으로 수정됐고, 시가총액도 9200억~1조1000억원으로 낮아졌다.

      신라젠은 이번 사태를 두고 주관사 NH투자증권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주관사에 수수료를 주고 컨설팅을 받는 발행사가 "갑을관계가 바뀌었다"고 언급할 정도다. 발행사는 주관사를 통해 거래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데 NH투자증권이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처음에 제시한 공모 가격도 당연히 거래소와 합의를 본 줄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발행사와 주관사, 거래소의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사례라고 단순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외시장에서 대어로서 신라젠이 받고 있는 관심과, 기술특례상장 제도 도입 후 가장 큰 규모의 IPO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지점이 많다. 또 NH투자증권은 지난해 IPO 대표주관실적 1위를 기록한 '베테랑'이다. 시장에서도 이번 일을 의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