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힘빠진 스튜어드십 코드...금융위·복지부 밥그릇 싸움 탓
입력 2016.12.23 07:00|수정 2016.12.27 23:16
    자율 규제라 당국이 주도해야 좋지만
    금융위·금감원 주도에 복지부는 무관심
    결국 제3 민간 기관이 운영 전면 나서
    학계 "제도 정착·확산 어려울까 우려"
    •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는 '스튜어드십코드'(Stewardship Code)가 힘 빠진 채 첫 발을 뗐다. 정부 부처간 갈등으로 인해 관리감독할 힘이 부족한 민간기관이 전면에 나선 까닭이다.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위원회(제정위)는 지난 19일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한국형 스튜어드십코드)을 발표했다. 운영 주체로는 한국거래소 산하의 민간 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을 선정했다. CGS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관의 공시 정보 취합과 이행 현황 점검 등을 맡는다.

      당초 학계를 비롯해 시장 전반에는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운영 주체를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감독 권한이 있는 당국이 주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금융투자협회 제정·2008년) 등 앞서 민간이 주도한 자본시장 선진화 시도는 여러 차례 무산됐다는 이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스튜어드십코드 전면에 민간이 나선 배경에는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파워 게임'이 있다는 관측이다.시장 관계자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가 금융위·금감원 주도로 진행되자 국민연금 상위 기관인 복지부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면서 "국민연금을 두고 벌어지는 두 부처 간 냉전은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위에서 금융위·금감원 인사가 하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1차 제정위에 참여했던 금융위·금감원 측 인사 세 명이 2차 제정위에서는 모두 하차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재계 반발이 가장 심했던 '원칙 3'의 표현이 완화되고, 안내 지침 내 사례가 대폭 삭제되는 등 규제 강도도 완화됐다.

      투자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스튜어드십코드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전 시도처럼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튜어드십코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고 이행 수준에 대한 평가까지 하고 있는 영국과, 공적연금(GPIF)이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일본의 공통 분모는 주관 기관이 당국이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코드는 전체 7개 원칙 중 일부만 이행해도 되는 자율 규제인 만큼 영국과 일본처럼 당국이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금융위와 복지부 간 갈등에 제3의 민간 기관이 운영 전면에 나서 제도 정착과 확산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된다"고 설명했다.

      주관 기관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CGS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형태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CGS가 기관으로부터 스튜어드십코드 관련 문의를 받는 과정에서 자사의 의결권 분석 서비스를 홍보할 수 있다"면서 "최초 논의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박경서 CGS장 친분으로 제정위에 참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CGS나 금융위는 이런 지적들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CGS는 "스튜어드십코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기관이 국내에는 많지 않다"면서 "스튜어드십코드 관련 해외 사례·국내 동향 등을 금융위에 자문하면서 제정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아직 도입 초기이고 개별 기관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단계가 아니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