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이 오히려 기업가치의 '동력'?
"기존 오너 영향력 적은 기업에 대한 관심 집중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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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 제조업체 인수를 두고 개인 오너와 협상 중이었는데, 어느 날 못보던 장부 하나를 들고 오더라. 공정 과정에서 부속물을 통한 개인적인 수입이 30억원쯤 되니까, 회사 매각 과정에서 가치를 더 쳐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한국에 있으면 건강이 안 좋아서 미국 하와이에서 경영해야 잘된다는 등 협상 초기부터 탐탁지 않아 왔는데, 이중장부를 보는 순간 아깝더라도 거래를 접자고 판단했다. 사업 기반이 좋아서였는지 다른 PE가 인수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는데, 몇 년 되지 않아 청산절차를 밟았다" (A 관계자)
#"전형적인 국내 내수 식재료 관련 업체인데, 해마다 신제품개발비를 따로 집행하면서 오너가 3~4개월씩은 미국 뉴욕 최고급 호텔로 가족 여행을 다닌다더라. 그 비용만 1년에 약 20억원이 넘다보니 이것만 줄여도 상각전영업이익(EBITDA)가 오르겠다고 당시 인수한 PE가 기대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B 관계자)
중소·중견기업의 바이아웃(Buyout) 거래에 참여해온 사모펀드 운용사(PE) 업계에서 종종 언급되는 사례다. 인수 업체에 대한 투자설명서(IM) 배포과정에서부터 기존 오너들의 후진적 경영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는 PE들의 경험담도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바이아웃 거래의 사전적 의미상 PE입장에서 부실 기업을 합리적으로 탈바꿈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후, 차익을 거두는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기존 경영진들과의 분쟁을 이겨내고 실적을 끌어올려 성공적으로 투자회수(Exit)한 PE들의 성공 신화도 이미 하나둘 축적되고 있다.
한 중견 PE 대표는 “일단 PE가 주주로 참여하거나 경영권을 확보하면 오너가 원해온 결과를 위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최소한 합리적 의사결정은 갖추게 된다”라며 “종업원들도 오너 눈치 없이 운영 계획을 제안하고, 확실한 인센티브 시스템도 도입하다보니 그 자체만으로도 기업가치 개선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접 바이아웃 거래를 경험해온 일부 PE들의 속내는 다소 복잡하다. 도덕적 잣대와 별개로, ‘기존 오너의 영향력을 기업 가치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나’를 둔 근본적 고민이다.
다른 PE 투자 책임자는 “인수를 검토해온 중소·중견업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처우나 직원 복지들이 상상 이상으로 형편없을 때가 많다”라며 “저연봉으로 회사가 지탱되는 이유가, '지금 참고 견디면 오너가 한 자리 챙겨주겠지'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고, 실제로 일부 오너가 챙기는 비자금들이 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회사 가치의 거의 전부가 ‘오너’였던 셈인데, 그 오너를 제외한 기업 가치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지급해야하니 한국내 바이아웃 거래는 본질적으로 ‘오버페이(Overpay)’가 될 수밖에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식품업체 사례를 소개한 B 관계자도 “인수 이후 기존 오너가 쓰던 비자금을 안 쓴다고 회사 가치가 오르는 건 아니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들었다”라며 “기존에는 오너 한 명이 기업 가치의 저해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과거에 기대했던 ‘금일봉’도 사라졌고, 주인도 사모펀드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전직원의 도덕적 해이에 직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해법으로는 기존 오너를 대체할 전문경영진의 역량이 언급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PE들의 오랜 고민인 경영진 풀의 ‘부재’에 대한 고민으로 되돌아 간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주로 대기업 출신 인력을 인수한 회사의 C-레벨 임원으로 모셔왔는데, PE가 찾는 인재상과는 떨어져 있다는걸 느낀다”라며 "대기업 오너 심중을 읽거나 지시사항을 이행하는데는 능하지만, 본인이 주도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운영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부분 기관에서 출자를 받기 때문에 청렴과 도덕성이 투자에 PE업의 기본 역량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인수한 회사가 지역 단위로 경쟁사들과 대기업 2차 3차 벤더 물량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영업 해야 하는 현장을 보면 영업을 위한 비자금까지도 이해하게 되곤 한다”라고 말했다.
한 중소 PEF 대표는 "국내 PE업계도 점점 해가 지나면서 투명성과 도덕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다보니, 실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회사는 자연스럽게 기피하게되는 분위기"라며 "상대적으로 오너에 대한 의존이 적었던 회사와 산업군 내에서의 PE간 인수 경쟁도 심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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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2월 25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