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주·증권거친 리스크 전문가
"현대증권 부동산, 관리 가능한 수준"
"대형사 기업여신 경쟁 원년…은행계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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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내 증권업계에 위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천수답(天水畓)식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더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지난 몇 년간 든든한 수익원이 됐던 채권평가이익과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수익은 역으로 숨통을 조이고 있다. 국내외 정치 상황에서 비롯된 불확실성 속에서 증권사들은 생존과 수익성 확보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진다.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급변사태를 대비하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영업부서에 발판을 놓아줘야 한다. 인베스트조선은 국내 4대 대형증권사의 CRO를 차례로 만나 리스크관리 철학과 올해 계획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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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현대증권 부동산 사업장을 모두 일일이 확인했다. 전체 우발채무 중 부동산 부문 우발채무를 크게 줄이고, 우발채무 중 부동산 비중도 절반으로 낮췄다. 현재 부동산 관련 리스크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파생상품 역시 급변동이 있지 않는 이상 관리 가능한 범위까지 미리 털어냈다."
정영삼 KB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사진)은 KB금융그룹이 현대증권을 인수하고 통합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파견한 임원이다. 지난해 6월1일 통합 작업이 시작되고 사흘만에 전격적으로 인사가 이뤄졌다. 부동산·파생상품 등 수익성 위주로 벌여놓은 현대증권의 사업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가 지주의 최우선 관심사였다는 방증이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났다. 통합 KB증권에서도 리스크관리를 책임지게 된 정 본부장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부동산 우발채무 등 옛 현대증권 사업부문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인수 검토 단계부터 현대증권 장부를 꼼꼼히 들여다봤다"고 했다.
현대증권의 부동산 등 우발채무 규모는 최대 3조원에 달했다. KB금융이 경영권을 인수한 시점에서도 2조8000억원 안팎의 만만치 않은 규모였다. 정 본부장 부임 이후 현대증권은 차곡차곡 리스크를 줄여나갔다. 구체적인 규모는 공개하기 어렵지만 이미 상당 부분 우발채무 감축이 이뤄졌다. 통합 이후 KB증권에서 부동산 우발채무가 차지하는 규모는 자기자본 대비 80% 이상에서 50% 수준으로 줄었다.
그는 올해를 '대형 증권사 기업여신 경쟁의 원년'이라고 내다봤다. 4조원 이상 자기자본을 갖춘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기업 신용공여와 여신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이 시장을 선점하는 증권사가 수익 구조 면에서 타사를 앞서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 본부장은 "금융지주계열은 그룹 신용평가시스템과 론(Loan) 비즈니스에 대한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여신 시장에서 차별화된 리스크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는만큼 타사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증권사의 리스크관리 역량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매일 새로운 구조의 상품이 탄생하고, 투자 자산의 순환주기가 짧은 증권사 특성상 리스크관리부서의 전문성이 증권사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적인 은행식 리스크관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리스크관리와 수익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그의 과제다.
정 본부장은 KB금융그룹에서 15년 이상 리스크를 관리해왔다. 은행(KB국민은행)과 지주(KB금융지주)·증권(KB투자증권)을 거치며 금융업 전반에서 리스크관리 경력을 쌓았다. 증권업계에서 보기 드문 리스크관리 전문가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파생결합증권 등 옛 현대증권 자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옛 현대증권 인수 후 전 사업장을 확인하는 등 특별히 신경써 관리하고 있다. 본부장 등 실무진을 불러모아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균형화하자'고 설득했다. 현재는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를 관리 가능한 수준까지 줄인 상태다. 수익성이 뛰어난 사업이라 아예 포기할 수는 없다.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큰 사업장을 선별하는 작업은 지속할 계획이다. 파생결합증권 역시 전액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을 손실 처리했다. 단기간 내 급등락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많은 증권사가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평가손실을 핵심 리스크 요인으로 꼽는다.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인가.
"증권사의 채권평가손실은 사업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위험 요소다. 특별한 해결책은 없다. 결국 상당 부분 털어내야 한다. 세일즈앤트레이딩(S&T;운용) 부서의 채권운용역들이 만기를 줄이고, 금리 방향성 위험 한도를 중립으로 유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다. 증권사에서도 채권에 대해 쇼트 포지션(Short Position)을 취하고, 국채·선물 등을 통해 금리 노출도도 낮출 때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올해 증권사 간 채권운용 실력차가 드러날 것이다."
- 문화가 다른 두 증권사가 하나가 됐다. 리스크 심사에 어려움은 없나.
"투자은행(IB) 본부만 아홉 개다. 신경써서 챙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를 상당 부분 줄인 것은 CRO와 실무진 간 협의가 원만히 끝났다는 방증 아니겠나."
- 증권사와 은행의 리스크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자산의 회전(Turnover) 정도가 다르다. 은행은 자산의 대부분이 장기 상품으로 고정돼있는데 비해, 증권사는 자산을 빠르게 회전시켜 수익을 낸다.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한 만큼 관리가 어렵다. 은행은 제도와 규제에 일정부분 얽매이는 부분이 있지만, 증권사는 좀 더 자유롭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는 증권업의 독특한 성과급제 또한 관리에 어려움을 더한다. 성과급 유인이 큰 영업 부서에서는 리스크를 늘리려는 욕구가 클 수 있는데, 그 행간을 읽어가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CRO의 몫이다. 은행에 비해 고려할 요소가 많다."
- 올해 증권업 전망이 밝지 않다. 수익을 내려면 리스크관리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지 않나.
"리스크관리와 수익성 사이의 균형을 찾고 있다. 일단 IB 부문에서는 재매각(Sell-down)이 가능한 사업에 자원을 많이 배분할 계획이다. 많이 회전시키겠다는 뜻이다. 자기자본 4조원기준을 맞춘 증권사에 허용되는 기업여신(신용공여·지급보증 등)이 주력 수익원 중 하나다. 대출을 받고는 싶지만, 제1 금융권(은행)을 이용하기 힘든 중견·중소기업이 주요 대상이다. 이 분야에서는 은행계 증권사가 유리하다. 국제 은행 감독 기준에 따라 모든 은행계 금융지주가 그룹 신용리스크평가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룹 내 신용등급 데이터베이스(DB)를 공유할 수 있고, 은행이 대출업 노하우도 보유하고 있으니, 산업계 증권사가 당분간 추격하기 힘든 시장이 될 것 같다."
- 은행계 증권사가 유리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은행계 증권사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은 바뀔 때가 됐다. 과거 증권업에서는 리스크관리가 필요 없었다. 위탁매매와 주식시장(ECM)·채권시장(DCM) 등 전통적인 사업은 리스크라고 할 것이 없었으니까. 2000년대 들어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이 허용되고, 지급보증 등 새 사업이 허용되면서 증권사의 리스크는 복잡다단해졌다. 해외 부동산을 포함한 대체투자 수요는 계속 커지고 있고, 리스크도 함께 증가할 것이다. 리스크를 분산하는 능력·변동성을 줄이는 포트폴리오 관리 능력·미래를 보는 눈 등 리스크관리 역량이 증권사의 생사를 좌우할 시대가 온다. 오랫동안 리스크관리 역량을 쌓아온 은행계 증권사가 두각을 드러낼 것이다."
- 리스크관리에 힘 실리다 보면 '은행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겠다.
"증권업은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현장에 있는 영업 직원보다 데스크에 앉아 있는 CRO가 상품이나 현장 분위기를 더 많이 알기 어렵다. 어떤 리스크를 취하는지조차 모르고 투자를 집행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1년 동안 열심히 늘린 자산이 이후 3~4년간 대규모 손실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증권업이다.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 정책에 따라 덩치가 커질 수록 리스크도 확대될 텐데, 업황 부진으로 새 수익원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관리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지 않겠나. 지주에서도 '잘못된 투자 집행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리스크관리 부서 뿐'이라며 꼼꼼히 보라고 독려하는 입장이다."
- 올해 금융업 전망 어떻게 보시나.
"내우외환의 해다. 내부적으로는 저성장의 장기화가 두렵다. 그동안 수출을 기반으로 기업이 성장하며 금융업의 외형도 커졌는데, 앞으로는 이런 형태의 성장이 어려울 것 같다. 외부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금리다. 롱 포지션(Long Position)으로 보유했던 채권이 금리 인하 추세에 이익을 냈고, 위탁매매(Brokerage) 손실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올해부터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채권평가손실이 발생할 테고, 만기를 짧게 가져가는 과정에서 운용 이익도 줄어들 확률이 높다.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채권평가이익이 사라지면 눈에 보이지 않던 문제(순익 규모 감소 등)가 드러날 수 있다."
◆ 정영삼 KB증권 본부장 약력 : 1967년 대구 출생. 1986년 대구 달성고 졸업. 1993년 한양대 회계학 학사. 1993년 KB국민은행 입행. 2000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융공학 석사. 2000년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부 대리. 2008년 KB금융지주 리스크관리부 팀장. 2012년 KB투자증권 CRO. 2015년 KB금융지주 리스크관리부장. 2016년 현대증권 CRO. 2017년 KB증권 C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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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2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