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2·3세, 투자나 펀드 등 '새로운 시도' 원해"
소액 분산투자…사업적 시너지 찾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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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들이 사모펀드에 출자하거나 직접 투자사를 차리는 등 여러 방식으로 자본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영 일선에 나서는 오너 2·3세들이 보수적이던 제약업계에 새 바람을 불어왔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래에셋캐피탈이 운용하는 1500억원 규모 펀드에 750억원을 출자한다. 부광약품은 해외 투자사가 운용하는 펀드에 현재까지 약 125억원을 투자했다. LSK인베스트먼트-BNH인베스트먼트가 공동 운용하는 385억원 규모 코리아바이오펀드엔 코스닥 상장 바이오 업체 대표들이 개인 자격으로 투자금을 출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접 전문 투자회사를 차려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제약사들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을 비롯한 그룹 관계사가 10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한미벤쳐스는 지난해 바이오 업체 두 곳에 투자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의 NS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산은캐피탈·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만든 350억원 규모 펀드를 통해 지금까지 4곳의 바이오 업체에 투자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있는 보령제약은 전문 투자사 설립을 고민하고 있고, 광동제약 역시 모 벤처캐피탈 업체를 찾아 공동으로 펀드를 만드는 것에 대해 논의 한 것으로 전해진다"며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한 LG화학은 운용사들과 접촉하는 등 펀드 결성이나 투자 조직 결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향후 제약사들이 자본시장에 더 자주 문 두드리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너 2·3세 경영이 본격화하며 보수적이었던 제약사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업계 정통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은 그간 병원과 약국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의약품 중심의 사업 구조로 오랜 기간 꾸준히 이익을 내와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2·3세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전략기획실에 지시해 전문 투자사 설립, 펀드 출자 등 다양한 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여러 제약사들이 세대교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령제약은 올해 초 지주사인 보령홀딩스를 세우고 보령제약의 지분 30.18%를 보령홀딩스로 넘겼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의 외손자이자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 아들 김정균 전략기획실 이사는 보령홀딩스 상무로 승진했다. 제일약품은 오는 4월 사업을 담당하는 제일약품과 투자를 담당하는 제일파마홀딩스를 인적분할한다. 제일파마홀딩스는 지주사가 된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지주사 일동홀딩스를 세우면서 오너 3세인 윤웅섭 대표가 단독대표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오너 2·3세들의 입김이 세지면 투자 등에 대한 관심이 실제 투자사 설립이나 출자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한미벤쳐스와 NS인베스트먼트를 세운 한미약품과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일찌감치 승계작업을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차남인 임종훈 한미벤쳐스 대표는 최근 이사회 의결을 통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NS인베스트먼트를 만든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은 올해 초 회장으로 승진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인 성향이 덜 한 것도 있고 이전처럼 상품(다국적 제약사로부터 판권을 받아 판매하는 의약품)매출이나 자체 R&D로는 미래 먹거리 발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바이오 업체 투자를 통해 시너지를 강화하고 신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사업적 명분도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운용사들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한 바이오 투자 전문 운용역은 "LP(출자자)들은 여전히 제약·바이오 투자에 높은 관심을 갖는 반면 해당 업종에 대한 이해도가 사실 높지 않아 출자를 망설이는데 제약사와 함께 한다고 하면 (운용사를) 더 신뢰하고, 투자 의향을 보인다"며 "이 때문에 실제 운용사들이 직접 제약사들에 접촉하며 공동 운용(co-gp)이나 메인 출자 등을 제안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제약사들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투자대상인 바이오 벤처 업체들 사이에선 제약사들이 펀드 투자를 빌미로 접근, 기술만 빼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는 것. 제약사들의 투자가 적은 금액을 여러 대상에 다각도로 분산투자하는 데 치중,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식으로 진행된다는 지적도 많다.
다른 바이오 투자 운용역은 "제약사들이 직접 투자에 나서기보다 펀드를 활용하면 더 투자대상과 접촉할 수 있지만 정작 투자대상인 바이오 업체들은 기술력만 뺏길까봐 겁을 낸다"며 "2013년 중견 제약사 2곳이 복지부 글로벌제약펀드에 출자 의지를 보였다가 결국 출자하지 못했는데 바이오업체들의 거부감으로 투자처 발굴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종근당 계열 투자사인 CKD창업투자는 모태펀드 출자를 받아 지난해에만 2건의 펀드(총 250억원 규모)를 만들었지만 지난해 투자는 33억원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소규모로 여러 바이오 벤처에 분산 투자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한 벤처캐피탈(VC) 업체 운용역은 "현실적으로 초기 지분투자 이후 후속투자가 이뤄져야 R&D 제휴가 가능해지고, 나아가 글로벌 제약사와 같은 M&A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현재 제약사들은 소액을 여러 곳에 분산투자하고 있어 이러한 효과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업계 정통한 다른 관계자 역시 "(제약사)오너들 입장에선 어차피 적은 금액의 돈을 투자해 기술이나 정보를 얻으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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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3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