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말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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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수조원대의 지원 방안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는 불신이 적지 않다. 지원 근거로 삼은 수주 전망이 여전히 낙관적이고, 산업 재편에 대한 숙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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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23일 자율협약 형태의 대우조선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2조9000억원의 빚은 출자 전환 및 만기 연장하고,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2조9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채권단 간 자율 협약이 무산될 경우 '사전회생계획제도'(P-플랜)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일단 자율 협약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RG 콜'이라고 부르는 선수금환급청구 부담 때문이다. P-플랜 가동 시 선박 발주 취소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높다. 법정관리의 일종이라 선주들이 회사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인식할 수 있어서다. 은행권이 보유한 선수금환급보증(RG) 규모는 약 14조6000억원에 이른다.
'15조원을 물어주느니 5조원의 빚을 떼이는 편이 낫다'는 울며 겨자먹기 식 판단을 한 셈이지만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금융위에 대한 불신은 상당하다.
2015년 10월 금융위는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하며 "추가 지원은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2016년 115억달러(약 13조원) 수주가 예상되고, 2020년까지 5조3000억원을 자구(自救)해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 수주액은 15억40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에 그쳤고, 자구안 역시 목표액의 34%(1조8000억원)밖에 이행하지 못했다.
금융위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우조선 측 수주 전망 55억달러(약 6조원)보다 보수적인 삼정KPMG 측 전망 20억달러(약 2조원)를 주로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증권사 조선·해운 담당 연구원은 "해양플랜트는 저유가 현상이 이어지는 한 추가 발주가 어렵고, 해운업계 역시 선박 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해운 동맹 개편 등으로 선박 발주 확대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 인해 2018년 54억달러 수주를 예상한 삼정KPMG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위가 "대우조선이 파산했을 때 국가가 입는 피해는 59조원에 이른다"며 지원 근거로 내세운 '대우조선 도산으로 인한 국가 경제적 손실 규모' 보고서는 대우조선의 의뢰로 작성됐음이 밝혀져 '셀프 보고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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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향후 인수·합병(M&A)이 가능할 정도로 대우조선의 몸집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2016년 말 수주 잔고는 약 680만CGT로 연간 최대 생산능력(약 338만CGT) 대비 적지 않다. 2018~2019년 납품 비중도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보다 높아 당분간 설비 축소가 어렵다. 방산 기술력 유출 우려에 대우조선의 해외 매각 또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점으로 인해 이번 금융위의 지원안에 대해 '일단 살리자'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신용평가사 금융 담당 연구원은 "대우조선 회생안은 목전의 자금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선업을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에서는 대우조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선업 지원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돼 주가는 당장 올랐다"면서도 "RG·외국환 일부는 시중은행이 계속 부담해야 할 것 같은데, 대우조선을 일단 살리더라도 정상화까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할 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수은은 대우조선 지원 여파로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BIS비율)이 1.1%포인트 하락하고, 4000억원가량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대우조선 재지원에 수은이 동원돼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은 신뢰성 문제"라며 "이번 대우조선 사태를 계기로 좀 더 근본적이고 다른 방식의 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찾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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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3월 24일 15:3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