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투사·신기사·엑셀러레이터…다양해진 벤처 투자자 면모
벤처 자금 늘고 규제 손질까지…"고수익 좇아 초기 단계로"
국내 벤처 투자자 '브랜딩' 가능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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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탈(VC) 업계가 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 신기술금융회사·엑셀러레이터 등 벤처 투자에 뛰어드는 투자자가 늘면서 중·후기 기업 투자로는 고수익을 거두기 힘들다는 판단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엔젤 투자붐을 일으키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제도 손질 가능성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9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VC 업체가 집행한 누적 신규투자 가운데 초기 단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2%로 나타났다. 1분기 기준 업력별 신규투자 비중에서 이 비중이 5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5년에는 1분기 기준 초기 기업 투자가 전체 신규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불과했다.
대개 스타트업·벤처기업은 창업 후 존속 기간에 따라 초기·중기·후기로 나뉘는데 초기 단계 기업은 창업 후 업력이 3년 미만인 기업이다. 중기는 3년 이상 7년 미만, 후기는 창업 후 7년 이상된 기업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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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초기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이른바 '엔젤 투자'에 집중하는 VC 업체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본엔젤스파트너스·케이큐브벤처스·캡스톤파트너스 등 초기 기업 투자에 특화된 VC 업체도 속속 등장해 투자 실적을 쌓고 있다.
올해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엔 이종승 전 NHN인베스트먼트 대표·양정규 전 아주IB투자 부회장·박용인 전 동훈창업투자 대표 등 벤처투자 업력이 오래된 베테랑들도 LLC(유한책임회사)형 VC 업체를 만들어 엑셀러레이팅펀드(舊 마이크로VC 펀드·자금의 60% 이상을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펀드)에 잇따라 지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벤처투자 시장 내 경쟁 심화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벤처투자 시장에 풀린 자금이 많아지면서 기존에 주력했던 중·후기 기업으로 투자자가 몰리게 되자 중·후기 기업 투자로는 고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위험도는 높지만 수익률 역시 큰 초기 기업 투자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 풀이다.
실제 벤처투자 업계 내 투자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신기술금융회사·창업투자회사 등 벤처투자에 나서는 전문 투자사도 증가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실제 펀드를 결성해 투자 실적을 기록한 신기술금융회사는 47개로 전년도 대비 30% 가량 늘었다. 창업투자회사 라이선스를 취득한 회사도 5개사가 늘어 총 120개사로 집계 됐다. 작년엔 처음으로 벤처펀드 결성액이 3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한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금은 물론 (벤처투자) 시장 참여자도 늘어 경쟁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 받는 기업 입장에선 더 높은 기업가치를 책정해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투자사 입장에선 수익률이 낮아지는 셈"이라며 "결국 더 좋은 조건에서 투자하기 위해 초기 등 아래 단계로 내려가는 VC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벤처투자 자금줄인 모태펀드의 엔젤모펀드·엔젤매칭펀드·엑셀러레이팅펀드의 운용 확대 기조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모두 존속 기간 3년 미만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현재 16개, 1920억원 규모의 엔젤매칭펀드를 운용 중이다. 올해는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엔젤모펀드를 만들어 총 16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2015년 첫 선을 보인 마이크로VC 펀드는 올해부터 '엔젤 투자'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엑셀러레이팅펀드라는 이름으로 출자사업을 진행했다. 올해까지 모태펀드는 해당 펀드에 총 1210억원을 출자했다.
업계는 새 정부의 엔젤 투자자 육성 및 출자금 확대 등이 잇따라 진행됨에 따라 초기 기업 투자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작년 말 중소기업 창업지원법 개정안을 통해 엑셀러레이터 등록제를 시행했고, 인가 받은 엑셀러레이터는 펀드를 결성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3월까지 총 20여 곳이 라이선스 취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엑셀러레이터는 창업 3년 미만 극초기 단계 기업을 발굴해 투자·관리하고 후속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2명의 운용역, 영리법인 기준 자본금 1억만 있으면 설립이 가능하다. 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금융회사의 자본금 기준이 각각 50억원, 1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완화된 기준이다.
지금껏 국내 엑셀러레이터는 창업투자회사 등 기존 벤처캐피탈 업체들과 동일한 투자활동을 했지만, 펀드 결성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 자기 자본금이나 운용역들의 자금으로 투자했다. 활발한 투자 활동이 어려웠던 셈이다. 올해부턴 기존 벤처캐피탈 업체에 준하는 세제혜택도 주어져 엑셀러레이터들의 초기 기업 투자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기청 팁스(TIPS) 등 엑셀러레이터 등이 참여할 수 있는 펀드에 투입하는 자금이 증가하고 있고 인가 받기도 어려운 게 아니라 엔젤 투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팁스 프로그램은 운용사로 선정된 엔젤 투자회사가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하면 중소기업청이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최대 9억원을 매칭해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사업이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팁스(TIPS) 프로그램 지원금을 지난해 530억원에서 210억원을 늘린 740억원으로 책정했다.
올해로 설립 5년차가 된 한 벤처캐피탈 업체 대표는 "과거엔 신생 VC업체가 설립 초기 모태펀드 출자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었지만 막상 해보니 '해 볼만 하다'는 VC들이 늘었다"며 "규제적인 면은 물론 펀딩 여건도 나아져 이제는 굳이 신생 VC가 아니더라도 초기 기업 투자 비중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곳이 적지 않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향후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VC 업체와 중·후기 기업에 투자하는 VC 업체로 양분되는 한편, VC 업체들의 '브랜딩' 작업이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 대표는 "초기 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VC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어떤 VC업체는 초기 투자 특화, 어떤 VC 업체는 후기 투자 특화 하는 브랜딩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그러면 LP들도 투자철학에 맞는 VC를 찾기 더 쉬워지면서 벤처투자 시장도 더 커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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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5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