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지분 10% 추가 매입해야
상법개정안 계류 중…"CJ대한통운 자사주 활용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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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일반 지주회사 규제 강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CJ그룹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배 요건이 강화되면 CJ대한통운의 지배구조 정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발표한 대규모 투자 전략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상 행위제한 요건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 가운데서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법안으로 꼽힌다. 이미 지난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대가 이뤄져 발의된 바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새롭게 손질할 공정거래법상 규제 정도가 2007년 규제 완화 이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공정거래법상 규정된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최소 지분비율이 20%(상장회사·비상장회사 40%)에서 30%(상장회사·비상장사 50%)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CJ그룹은 지난 2011년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계열로 편입한 CJ대한통운의 지분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 현재 CJ㈜는 CJ제일제당과 KX홀딩스를 통해 CJ대한통운을 지배하고 있다. CJ제일제당과 KX홀딩스는 CJ대한통운 지분을 각각 20.08% 보유하고 있다. 규제 강화시 CJ제일제당과 KX홀딩스는 각각 CJ대한통운의 지분 9.92%를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 2일 종가 기준 CJ대한통운의 시가총액은 4조5510억원이다. 단순 계산하면 지분 약 10%를 추가로 매입하기 위해 4551억원을 들여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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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CJ제일제당이 CJ대한통운을 단독 지배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수목적회사(SPC)인 KX홀딩스가 추가로 지분을 매입할 여력이 많지 않아서다. 두 개의 자회사를 통해 하나의 손자회사를 지배하는 공동 손자회사가 법적 금지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CJ제일제당이 CJ대한통운의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CJ그룹은 CJ대한통운을 인수할 당시 CJ GLS와 CJ제일제당이 공동 출자해 인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인수 여력이 있는 CJ㈜와 CJ제일제당이 공정거래법상 행위 제한 요건에 따라 인수 주체로 나설 수 없었던 까닭이다. 외국법인과의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위해 예외 조항으로 둔 공정거래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셈이다.
한 증권사 CJ그룹 담당 연구원은 "CJ대한통운의 인수 주체가 CJ제일제당이었고, 현재 CJ대한통운의 실적이 CJ제일제당의 연결로 잡히기 때문에 CJ제일제당이 CJ대한통운을 단독 지배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CJ그룹 담당 연구원도 "이미 공동 손자회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어 이번 국회에서도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며 "추가 지분 매입 여력과 규제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할 때 CJ제일제당 중심으로 정리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CJ그룹이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실탄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현금성자산은 올 1분기 연결 기준 7000억원 수준이지만, 6조5000억원에 이르는 총차입금이 부담 요소다. CJ제일제당의 하반기 만기 도래할 회사채 규모는 연결기준 2230억원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다른 그룹과 달리 지배구조 정리를 위해 수 조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CJ제일제당의 재무구조나 향후 그룹의 대규모 투자방안 등을 고려한다면 일부는 보유 현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차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CJ대한통운이 보유한 자사주(23%)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이 많다. 인적분할을 통해 자사주의 의결권을 부활시켜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금지하는 상법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의 신용등급이 우량(AA)하기 때문에 채권 발행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올초 4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때 수요예측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아 증액 발행 계획을 접었던 것 등을 감안하면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그룹 차원에선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정리에 적지 않은 자금이 소요돼 향후 회사의 M&A 전략에 영향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 복귀에 발맞춰 5년간 3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룹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해외 M&A에 쏟는다는 계획이다.
CJ그룹에 정통한 IB업계 관계자는 "실탄이 많지 않은 CJ로선 이미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가중된 재무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갈 길이 바쁜 와중에 지배구조 정리를 위한 자금 소요가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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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6월 0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