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M&A 도전, IB업계는 '주목'
가중된 재무 부담이 당면 숙제
-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 2년여간의 경영 공백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글로벌 오감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에 발맞춰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도 굵직한 투자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투자업계에서도 CJ그룹 행보에 주목하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크고 작은 투자건 집행을 위한 실탄 확보 차원에서 보면 챙겨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CJ그룹은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주목하는 그룹 중 하나다. 공격적인 해외 투자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만큼 자본시장과의 접점이 확대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달 4년 만에 참석한 공식 석상에서 '2020년 그룹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달성'이라는 기존 목표를 재확인했다. 2030년에는 3개 이상의 사업 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는 과감한 목표도 추가했다.
주력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을 시작으로 '통큰 투자'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러시아 냉동식품 업체 라비올리를 300억원에 인수했고, 최근에는 식물성 고단백 소재인 농축대두단백(SPC) 부문 세계 1위 기업인 브라질 셀렉타 인수에 3600억원을 들였다. 회사는 충북 진천에 5400억원을 들여 식품 통합 생산기지를 세우겠다는 청사진도 발표, 이달에만 총 9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그룹의 또다른 주요 계열사인 CJ대한통운도 베트남 물류기업 제마뎁을 포함한 다양한 해외 매물을 검토하는 등 보폭을 넓힐 채비를 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CJ그룹이 향후 4년간 투자한다고 공언한 36조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중국·동남아 등 해외 기업 M&A에 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격적인 M&A가 점쳐지는 사업 부문은 바이오·식품(CJ제일제당) 부문과 물류(CJ대한통운)다. 투자 효과가 단기간에 나오는 물류·바이오 부문이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넓히는 등 기반을 닦아놓으면, 추후에 콘텐츠·음식료(외식) 부문이 나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복안이다. CJ그룹이 오너 구속 직후인 2014년부터 작년까지 집행한 투자금은 연간 1조~2조원 수준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그룹 내 계열사마다 매출 비중별로 매출 목표 할당치를 정해줬다"며 "36조원이라는 투자금도 매출 비중별로 각 계열사에 할당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할당된 목표에 도달하려면 몸집을 불리는 방법이 유일하기 때문에 계열사마다 매물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투자자들은 CJ그룹의 사업전략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오너 공백기가 시작된 시점인 2014년까지 해외 확장 전략을 펼쳤지만,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애매하다는 평도 나온다.
CJ제일제당과 CJ푸드빌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CJ제일제당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 식품·바이오 사업에 약 6조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해외 사업 매출 규모가 3조9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지만 실익은 아쉽다는 시각이다. CJ제일제당의 지난해 말 해외 사업 영업이익률은 약 4%로 2006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CJ푸드빌 역시 마찬가지다. 공격적인 해외 점포 수 확대로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5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
해외 사업에서의 수익성 확보가 지연될 경우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더구나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실탄 마련에 나서야 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투자자들의 재무구조 개선 요구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016년 말 기준 CJ그룹 연결 총차입금은 9조7000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한다. 연결기준 그룹이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1조6000억원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적지 않은 자금 소요도 예정돼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 지주사의 상장 자회사 최소 보유지분 기준이 강화되면 CJ제일제당 자회사 CJ대한통운의 지분구조를 정리하는 데 만만치 않은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추진했던 M&A 거래가 잇따라 무산된 점도 시장의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CJ그룹은 최근 2년간 코웨이·대우로지스틱스·APL로지스틱스·티켓몬스터·맥도날드·동부익스프레스·동양매직·바디샵 등 대규모 인수전에 명함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거나 막판에 발을 뺐다. 그룹은 경쟁 업체의 전략 등 데이터룸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자금을 투입한 보람이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선 '비싼 비용을 들이고 건진 것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오너 복귀를 좋지 않게 평가하는 시각도 분명 있다"며 "투자 대비 수익성을 꼼꼼히 따지는 전문경영인과 달리 오너들은 일단 덩치를 키우고 사세를 넓히겠단 의지가 확고하면 (거래) 성사 가능성 및 시너지가 조금 낮더라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CJ그룹 담당 연구원은 "과거 대규모 투자 계획만으로 CJ㈜ 주가가 30만원 대까지 올랐던 것과 달리 현재 주가 흐름은 잠잠한 편"이라며 "어떻게 하겠다는 전략만으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하던 시기가 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실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여태껏 보여준 것이 없지 않느냐는 투자자 시각을 방증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계열사 간 교통정리도 그룹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거론된다. CJ그룹은 각 계열사마다 M&A 및 신산업 발굴을 담당하는 투자 조직을 갖추고 있다. 각 계열사 내 해당 조직이 매물 검토부터 실사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검토하고, 지주사인 CJ㈜는 최종 결정만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주요 계열사들이 그룹의 투자전략 앞단에 서기 위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주요 계열사 간 의견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굵직한 사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순발력은 물론 장기적 안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6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