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시장과 접점 넓히는 IT포털·게임업계
CEO·창업자 투자 철학따라 주요 실무진도 전열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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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업을 하더라도 인수·합병(M&A) 전략에 있어선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이는 기업들이 있다. 기업 M&A는 향후 회사의 성장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 전략인 만큼 회사를 이끄는 수장의 성향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르게 나타나는 모양새다. 최근 자본시장에서 M&A의 필요성과 기대감이 나오며 주목받고 있는 사례들을 짚어봤다.
◇ '꽂혀야 하는' 서경배 회장 vs '달인' 차석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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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장품 업계를 이끄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M&A 전략에 있어 성향이 다르다. 서경배 회장은 꽂히는 대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M&A를 추진한다. 반면 차석용 부회장의 집무실에는 인수 가능한 기업들의 현황을 모아 놓은 서류철이 한가득이다.
서경배 회장이 지난 2013년 이후 사들인 회사는 5곳이 채 되지 않는다. 애정을 가지고 인수한 프랑스 화장품 회사 아닉구딸(Annick Goutal)은 적자를 안고 힘겹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새 고성장을 이루며 곳간이 두둑해지자 회사는 물론 투자자들도 M&A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글로벌 화장품사들은 지분 투자에서부터 합작 회사(JV) 설립 등 다각화된 방식으로 크고 작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도 이런 투자 추세에 발맞춰 '굵직한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프랑스 로레알 그룹이 영국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더 바디샵'을 매물로 내놨을 때 시장의 이목은 아모레퍼시픽으로 쏠렸다. 서경배 회장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현재 서 회장이 '꽂힌' 회사를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는 전언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서경배 회장을 보필하는 경영진 중에서도 실패의 리스크를 짊어지고 M&A를 추진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라고 귀띔했다.
차석용 부회장은 지금껏 총 16건의 M&A 거래를 성사시키며 'M&A의 귀재'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이런 별명이 다소 무색해졌을 만큼 추진하는 M&A 건수가 부쩍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업계에서는 차석용 부회장이 다음 M&A 타깃을 찾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파운데이션·립스틱·아이섀도 등에 주력하는 색조 화장품 업체가 유력한 검토 대상이란 후문이다.
◇ 김택진 "M&A 보단 R&D" vs 방준혁 "해외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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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라이벌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의 M&A 전략도 엇갈린다. 김택진 대표는 '효자 IP(지적재산권)'인 리니지로 큰 탈 없이 지내왔다. 리니지·리니지2 등 리니지 게임이 꾸준히 흥행하고 있고 리니지IP로 넷마블로부터 로열티 수익도 내고 있다. 최근엔 모바일 버전 리니지 게임(리니지M) 출시로 시장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택진 대표가 '굳이 무리한 M&A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경영 철학을 가지게 된 것도 이해된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최근 5년간 엔씨소프트가 성사시킨 의미 있는 M&A건은 프로야구 캐주얼 게임사 엔트리브소프트와 미국 게임 개발사 몰튼스튜디오 정도다. 그나마 엔트리브소프트 건은 소문난 '야구 애호가'인 김 대표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투자라는 관측이 많다. 회사가 1084억원을 들인 엔트리브소프트는 인수 후 4년간 적자를 지속하는 등 내부에서조차 '계륵'으로 인식됐지만, 꿋꿋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넷마블게임즈는 엔씨소프트와 정반대의 행보를 걸을 전망이다. 넷마블은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에 인수금융을 더해 최대 2조~5조원까지 M&A에 투입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게임업계에선 빅3 게임사 중 후발 주자인 넷마블이 넥슨과 유사한 M&A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넥슨은 그간 직접 개발한 게임보다 인수한 게임에서 재미를 봤다. 메이플스토리·던전앤파이터가 대표적이다.
태생이 게임 퍼블리셔였던 넷마블게임즈는 글로벌 게임사로서 확고한 지위를 갖추기 위해선 M&A가 정답이라고 보고 있다. 곡절을 겪으며 넷마블을 조 단위 회사로 키운 방준혁 의장은 자부심 만큼이나 포부도 큰 인물로 전해진다. 2015년 미국 모바일 게임사 SGN 인수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M&A 거래에 명함을 내밀었다. 지난해엔 최대 5조원이 거론되던 플레이티카 인수에서 고배를 마신 뒤 9000억원을 들여 카밤을 인수하기도 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방 의장은 IPO 당시 IR팀과 함께 회사의 밸류에이션 측정을 적극적으로 챙긴 것으로 안다"며 "공격적인 외형 확장에 초점을 두고 있어 엔씨소프트와는 조금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서 재개하려는 이해진 vs '카카오 생태계' 꿈꾸는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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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전 의장은 M&A에 대한 불신이 있는 편이다. 네이버가 M&A를 통해 국내 대표적인 IT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2000년대 중반 인수한 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윙스푼·미투데이 등은 네이버에 인수된 후 서비스를 종료했다. 자동주소록 관리 서비스 업체 쿠쿠박스는 인수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나마 '첫눈' 인수를 통해 영입한 신중호 사단이 이해진 창업자의 불신을 씻어주고 있다. 신중호 현 라인 CGO(글로벌총괄책임자)와 개발팀이 만든 '라인(LINE)'이 뉴욕·도쿄 거래소 동시 상장에 성공하면서 회사 차원의 M&A도 재개되는 분위기다. 한국투자파트너스·소프트뱅크벤처스 등 국내 대형 벤처캐피탈(VC) 업체들은 물론 프랑스 코렐리아캐피탈과 잇따라 펀드를 만드는 등 본격적인 투자에 시동을 걸고 있다. 주요 투자 대상은 '해외 기업'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는 김범수 의장의 진두지휘 하에 M&A를 진행한다. 김범수 의장은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났지만 실질적인 최종 의사결정권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내부에선 임지훈 대표는 수렴청정을 받는 왕이고 결국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건 상왕인 김범수 의장이라는 말마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임지훈 대표와 최세훈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주요 경영진이 결정한 사안도 김범수 의장과의 마지막 저녁식사 자리에서 통과돼야 진행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비화"라며 "대표적인 사례가 로엔"이라고 귀띔했다.
김범수 의장은 자의식이 강한 인물로 알려진다. 국내에 '카카오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오랜 꿈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이 많다. 카카오는 성장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투자 기구를 통해 스타트업·벤처에 투자하는 독특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엔 케이큐브벤처스가, 어느 정도 성장한 벤처 기업엔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하고 이들 가운데 성장 궤도에 오른 기업이나 덩치가 큰 곳은 카카오가 직접 나선다. 간편결제·인공지능 등 신사업에 속속 진출한 카카오는 신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국내 테크 스타트업을 특히 눈여겨볼 가능성이 크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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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6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