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증권이 SK증권과의 합병을 미루는 이유
입력 2017.08.01 07:00|수정 2017.08.03 12:22
    "당분간 케이프증권-SK증권 합병 없다"
    자금 마련ㆍ인수 주체 나선 케이프증권
    합병 시 SK증권 자사주 '잉여 자본' 분류
    "인력 구조조정 부담도 영향 미쳤을 듯"
    • SK증권 매각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케이프 컨소시엄이 "케이프투자증권과 SK증권의 합병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득실을 따져 결정하겠지만, 지분 추가 매입 및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을 끝낸 이후에도 두 증권사의 독립 경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SK증권 인수 주체로 케이프투자증권이 나섰는데, 두 증권사 합병 시 케이프투자증권이 보유한 SK증권 지분이 '잉여 자본'이 되는 점이 주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 인수 자금은 케이프투자증권이 주로 마련한다. 우선 협상 대상 지분(10%) 매입 자금과 향후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케이프투자증권 계정에서 자체 조달할 계획이다. 케이프투자증권 측은 "당장 처분 가능한 유가증권과 보유 현금ㆍ한도대출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까지 합하면 조달 가능 금액은 1조원에 이른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거래 종결(closing) 위험을 줄이기 위해 케이프투자증권을 인수 주체로 활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LIG투자증권(현 케이프투자증권) 인수 때처럼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당시 모(母)기업인 케이프는 총 대금 1300억원 중 300억원만 투입했다. 재무적 투자자(FI)를 유치하고 증권사 인수금융을 활용해 나머지 1000억원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력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케이프투자증권이 인수 주체로 나서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추후 두 증권사를 합병하면 자본이 낭비되는 셈이다. 케이프투자증권은 향후 30%까지 SK증권 지분율을 늘릴 계획인데, 이 상태에서 양사가 합병하면 이 지분이 자사주가 돼 자기자본에서 제외된다.

      28일 종가(1260원) 기준 지분율 20%를 늘리려면 807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10% 인수 대금 예상액 600억원까지 총 1407억원가량이다. 미래에셋대우의 합병 직후 자본 규모가 5조원대에 그쳤던 것도 상당 지분이 자사주화되며 자기자본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향후 매각 등 자사주를 활용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활용 방안을 찾기까지는 일단 지분 매입 자금이 잉여 자본으로 분류되는 상황"이라면서 "최근 네이버와 자사주 교환을 택한 미래에셋대우도 미래에셋증권-대우증권 합병 과정에서 생긴 대량의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오랜 기간 고민했다"고 전했다.

      인력 조정 문제도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케이프투자증권이 SK증권의 인력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회사채 등 SK그룹 내부 시장(captive market) 물량을 일정 기간 동안 계속 취급하도록 보장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두 증권사의 강점이 서로 다르다지만, IBㆍ주식발행시장(ECM)ㆍ채권발행시장(DCM) 업무는 양사 모두 영위하고 있다. 합병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케이프투자증권은 SK증권의 소매영업(retail)부문을 구조조정하거나 철수하지 않을 계획이다. 해당 부문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전체의 62%인 467명ㆍ지점은 25개다.

      당분간 합병 계획이 없는 만큼 케이프투자증권은 SK증권이라는 상호명을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브랜드 사용료는 연 10억원 수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 선택이 SK증권의 최대 경쟁력으로 꼽히는 내부 시장 물량 유지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예상치 못한 '누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인영업(wholesale)과 IB부문에서 두 회사가 '한 몸' 취급을 받게 되는 까닭이다. 사실상 한 몸인 두 증권사와 굳이 각각 거래할 필요가 없는 고객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 1 더하기 1이 2보다 적을 수 있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다소 무리한 일정을 무릅쓰고도 속도감 있게 합병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