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하락…매각 등 손해 커
유력 인수후보군 반응도 '냉랭'
-
"분당 150m 이상의 속도로 수직 상승해 백두산보다 높은 2700m 상공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는 최첨단 전투 헬기"
"2025년까지 300대를 수출하고 10조원이 넘는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국책 사업"
72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4년 전 완성된 한국 최초의 기동 헬기인 수리온의 위용은 남달랐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큰 자부심이 될 것이라 관측됐던 이 수리온이 최근 불거진 방산 비리의 주인공이 됐다.
-
검찰은 KAI가 2013년부터 올해까지 최대 수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는 혐의를 집중 수사 중이다. 수리온과 3조원 규모의 이라크 경공격기 FA-50 수출 및 현지 공군 기지 건설 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을 회계기준에 맞지 않게 선반영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KAI는 "특정한 시점에 실적 부풀리기를 위해 회계 인식방법을 변경한 바 없다"라며 부인하고 있다.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도 KAI의 2013~2016년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정정한 올해 반기보고서에 '적정'이란 검토 의견을 내놨다. 정확한 분식회계 여부는 금융감독원의 회계 감리와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야 최종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분식회계 의혹은 KAI의 도덕적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수리온 등을 둘러싼 기술력 결함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동안 오작동이 있었던 기체들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분식회계 의혹까지 받게 된 경영진의 비윤리적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장 올 연말 예정된 17조원 규모의 미국 차기 고등훈련기 교체사업(APT) 수주전에 끼칠 부정적 영향이 거론되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꼽히는 이 수주전에서 KAI는 미국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이뤄 스웨덴 사브와 경쟁하고 있다. KAI는 수주전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자신하지만, 발주 기업들은 KAI의 기술력과 경영 안전성, 도덕성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관측된다.
수년째 지지부진한 매각 작업은 아예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분식 의혹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과 무관하게 KAI 매각전을 둘러싼 시장의 관심은 한층 꺾인 상태였다. 올 상반기 최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에서 수출입은행으로 바뀐 점이 영향을 끼쳤다.
수출입은행은 급감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산업은행으로부터 KAI 지분을 현물출자 받았다. BIS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지분을 팔지 않은 채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시가와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했을 때 최소 2조원 이상이 필요한 KAI를 살만한 인수 후보군도 이제 마땅치 않다. 과거 한화, LIG넥스원, 현대자동차 등 유수의 기업은 KAI에 눈독을 들인 바 있다.
강력한 인수 후보였던 한화는 삼성 화학 부문과 두산 방산 부문 등의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자금 여력이 소진됐을 뿐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상 KAI를 인수할 필요성이 과거보다 떨어졌다. 육상 제품을 늘리는 한화와 달리 KAI는 항공기 부품 등으로 사업군을 다각화 중이기도 하다. 또 앞선 정권의 특혜 의혹이 있었던 탓에 방산기업에 대한 M&A를 추진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주사 전환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라 방산 사업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많지 않다. LIG넥스원도 사업적 측면에서 큰 관심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KAI가 진행 중인 사업들의 덩치가 커졌다는 점도 일반 기업들의 인수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대표적으로 KF-X 사업만 해도 규모가 8조원에 달한다. 연구 개발비의 상당 부분은 정부로부터 나온다. 특정 기업이 KAI 경영권을 인수해 개발비를 받게 될 경우 특혜 시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방산 업체가 정부로부터 받은 개발비는 제품 생산이 실패해도 대손 처리되지 않고 자산에 반영된다는 회계 처리의 특수성이 있다. KAI의 세 번째 매각 작업에 힘을 실을 만한 적절한 요소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8월 06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