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주식 일부 처분하며 의지 피력…지나친 대응 아니냐는 지적도
"정부와 얽히고 싶지 않다는 강박관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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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총수 지정 여부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직·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공정위를 찾아가 읍소하는가 하면 네이버 보유지분 일부도 처분했다. 향후 공격적인 해외 투자 기조를 이어갈 네이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시장에선 네이버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23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보유한 주식 11만주(지분 0.33%)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818억원 규모다. 이해진 창업자는 지난 17일에도 장 마감 이후 보유한 일부 주식을 블록딜로 처분하려고 했으나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불발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지분 매각을 이해진 창업자를 법적 동일인 즉, 총수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공정위에 거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네이버는 내달 준(準)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있다. 6월말 네이버 국내 계열사 자산총액은 약 4.6조원(일본 자회사 라인 제외)이지만 8월말이면 5조원을 넘어, 준대기업집단 선정 기준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네이버는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사람 혹은 법인을 총수로 지정, 공정위에 신고해야 한다. 이해진 창업자는 최대주주가 아니며 대표이사도 아니므로 네이버는 '총수 없는 대기업'이 돼야 한다는 게 네이버의 주장이다.
이해진 창업자가 총수로 지정되면 본인 및 친인척(6촌 이내 혈족·4촌 이내 인척)이 회사와 거래할 경우 공시 의무가 생긴다. 공정거래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내부거래가 금지되며 사익 편취 규제 적용 대상에도 들어간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언론·고용·금융·조세 등 38개의 법적 규제를 받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해진 창업자는 법적 규제들 보다도 국내외서 재벌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며 "해외서 기업 쇼핑을 늘릴 네이버에 재벌 딱지가 붙으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2011년 이후 플랫폼·기술 등의 분야에 약 4500억원을 투자했다. 최근엔 기술개발 자회사인 네이버랩스와 라인이 해외투자 선봉장 역할을 하며 공격적인 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엔 2000억원 규모의 프랑스 제록스연구소를 인수했고, 작년엔 드비알레·사운드하운드 등 해외 기술 기업 인수 혹은 지분 투자도 단행했다.
올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도 네이버는 "앞으로 5년간 기술·콘텐츠 등에 5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저하되더라도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공격적인 해외 투자를 지속할 것이란 설명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가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기존 재벌기업과 다른 경영 체제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실질적으로 이해진 창업자의 의중이 경영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총수로 지정돼 해외 투자는 물론 국내 사업 전반에까지 이해진 창업자가 관여하고 있는 것이 공식화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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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일각에선 이해진 창업자가 총수 지정 여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서 해외 투자를 담당하며 실질적으로 네이버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 지적이다.
지분 구성 또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해진 창업자는 이사회 구성원 중 유일하게 1% 이상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임원 등 특수관계인을 포함하면 8% 정도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 10.76%를 가진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지분 획득 목적을 단순 투자로 밝히고 있어 이해진 창업자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친인척·자녀들이 카카오 지분을 가지고 있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달리 이해진 창업자는 자녀들이나 친인척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없고, 본인(이해진 창업자)도 CEO가 아닌 GIO 직함을 가지고 있어 억울한 면도 있다"면서도 "실질적인 지배력이나 지분구조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총수의 위치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의 창업자 역시 과반수 의결권을 확보, 경영 전반을 챙기고 있지만 해외서 활동하는 데 큰 제약이 없다는 점 역시 총수 지정 여부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네이버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해진 창업자는 네이버가 과거부터 정부규제와 관련해 이런저런 잡음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부 의중대로 총수 있는 기업이 되면 향후 사업을 벌이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IT기업 특성상 창업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총수 지정을 피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등의 액션을 취하면 오히려 투자자 특히 외국인 투자자에겐 창업자가 회사에서 손을 떼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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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8월 23일 14:0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