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초기 사업 주도자들 대부분 손 떼…비주력 사업 정리 시도
롯데·신세계, "매각 규모·배경 수용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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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플래닛이 롯데·신세계의 손을 잡고 '11번가 합작사'를 설립하려던 계획이 4개월만에 사실상 무산됐다.
SK그룹의 SK플래닛 지분 매각이 파트너 관계를 맺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해 대규모 현금을 쥐겠다는 뜻으로 비춰지면서 전략적 투자자(SI) 롯데와 신세계 모두 발을 빼게 됐다는 평가다. 롯데와 신세계 모두 "11번가의 경영권을 원하면 총투자금액 만큼을 내라"는 SK의 고자세 또는 무심함으로 해석되는 협상 태도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참여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사가 합작사 설립을 위해 협상테이블에 앉은 건 올 4월이다. 11번가의 실적 부진과 재무적투자자(FI) 유치에 난항을 겪던 SK플래닛은 타개책으로 유통 공룡들의 경영 방식을 11번가에 접목시키기로 했다.
SK측이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낸 곳은 신세계다. 신세계 입장에선 분기 월평균 거래액이 6000억원에 육박하는 '11번가'란 브랜드 영향력이 매력적이었다. 두 달후엔 SK가 롯데 측에 합작사 설립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마침 온라인 사업에 한창 힘을 싣던 신동빈 회장의 뜻에 발맞춰 롯데도 협상전에 적극 뛰어들 기세를 보였다.
'SK-롯데-신세계' 대기업 군단이 쏘아 올린 포문은 화려했지만, 그 뒤로 좀처럼 구체적 협상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다. 각 사가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갖 잡음이 나왔다. SK가 11번가의 경영권을 내주지 않는 한 롯데가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들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SK는 끝까지 11번가의 경영권을 지킬 것이란 입장을 반복해 밝혔지만, 시장에선 SK의 "확실한 의중을 읽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는 동안 신세계는 뚜렷한 이유 없이 "(11번가 합작사) 설립 검토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사실상 무산됐다. 주 원인으로는 SK 측이 내부적으로 추산한 높은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와 이에 얽힌 이번 거래를 대하는 '무심한 태도'가 거론되고 있다.
SK가 롯데, 신세계 측에 11번가 매각 가격으로 제시한 규모는 3조6000억원이다. 이 가격에 담긴 의미가 의외로 단순하다. 3조6000억원은 2008년 11번가 사업을 시작한 이래 SK가 쏟은 총 투자금과 동일하다. 밸류에이션을 진행한 기준이 그 동안의 투자금으로, 합작사 설립 또는 매각의 목적은 투자금 회수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플랫폼 기업 특성상 기업가치 산정엔 어려움이 따른다. 정해진 산정 공식이 없다. 이런 특이성을 차치하더라도 롯데와 신세계 입장에선 3조6000억원이 지난해 영업적자를 본 회사를 인수하는데 들일 만한 액수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SK가 이번 딜(Deal)에서 우왕좌왕한 배경은 오래전 SK그룹의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인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1번가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 멤버들이 이 '유공 시절' 라인이고, 이들이 11번가를 포함한 비주력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11번가도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거래에 밀접한 한 관계자는 "과거 LG그룹이 GS그룹을 계열분리하면서 GS그룹이 진행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한 식으로 SK그룹도 과거 유공 시절 창업주 라인이 이어가던 사업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롯데는 "SK측이 이번 거래를 미련 없이 포기하게끔 하는 요인을 제공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지주사 전환을 진행하며 막대한 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兆) 단위의 투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주가 올리기에 한창인 롯데쇼핑이 무리하게 투자에 나설 여유도 없다.
SK플래닛은 이번 협상으로 '존재감 드러내기'에 확실히 성공했지만, 잠재적 이득보다는 손실이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향후 11번가 투자 유치나 매각을 위해 또 한 번 유통 공룡들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그 때도 롯데나 신세계가 관심을 보일 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이다. FI 유치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 신세계라는 추후 투자회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력 SI와의 관계가 틀어진 상황에선 FI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기엔 부담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거래를 통해 SK그룹이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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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9월 0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