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대상 기업 살릴 수요는 있는데
지분 투자 시 BIS비율 산정에 불리해
"기구 신설ㆍ유인책 등 정책 지원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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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이 연합자산관리(UAMCOㆍ유암코)와의 '기업 구조조정 펀드' 결성 논의를 잠정 중단하고 있다. 초기 시장이라 위험이 커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에서다. 업계에서는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신한ㆍ우리ㆍKEB하나은행은 유암코와의 기업 구조조정 투자 펀드 결성 준비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시중은행은 부실채권(NPL) 단계로 진입한 파산 기업이 아닌 회생의 여지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블라인드(blind) 펀드에 출자자(LP)로 참여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
지금까지 이런 기업들은 기업여신지원부나 기업개선부 등이 맡아 관리했다. 기업성공프로그램(CSPㆍCorporate Success Program) 등의 이름으로 ▲원리금 상환 유예 ▲금리 인하 ▲경영 컨설팅 같은 서비스를 지원했다. 그러나 위험 기업에 대한 심사의 문턱이 높아 회생 기업에 가장 중요한 신규 자금 지원 결정은 쉽지 않았다. 시장 성숙에 따라 채권단 중심 구조조정 효과마저 떨어지면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작년 말부터 일부 시중은행과 유암코가 머리를 맞댔지만, 현재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시장의 수익성에 대한 검증이 아직 안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회생 기업은 제1 금융권을 통한 레버리지(leverage) 활용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제2 금융권이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메자닌(mezzanine)이나 후순위 투자에 나서줘야 하지만, 아직 자본시장에서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 구조조정 기업 투자에 자본금이 많이 필요한 이유다.
한 연기금 대체투자 담당자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재무 상태부터 법ㆍ제도적 위험, 투자에 실패했을 경우 평판 위험까지 고려할 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라면서 "아직 기업 구조조정 시장은 초기 단계라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아직은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펀드를 통한 지분(equity) 투자 시에는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BIS비율) 하락도 감수해야 한다. 국제 은행 감독 기준인 바젤 Ⅲ 규제에 따라 은행의 지분 투자는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 400%를 적용한다. 단순 대출 대비 BIS비율 산정에 4배나 불리한 셈이다.
정책적 불확실성도 원인 중 하나다. 정부가 올 상반기 KDB산업은행을 주축으로 '신(新)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그 이후 정권 및 산은 회장이 바뀌어 해당 정책의 세부사항이 변동될 수 있다는 우려다. 펀드 결성 후 운용을 맡을 유암코의 구조조정 기업 투자 기록(track record)이 많지 않은 점도 부담이다.
펀드 결성을 검토했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책이 변동될 가능성과 아직 초기인 기업 구조조정 투자 시장 상황, 해당 시장에 국내 전문가가 없는 점 등을 종합 감안했을 때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은행권은 기업 구조조정 시장 개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감한다. 기업 구조조정 펀드 결성 논의를 완전히 중단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유암코 이외에 다른 시장 참여자가 등장해 경쟁하며 기업 구조조정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진단한다. 관련 기구를 신설하거나 시장 참여자에 더 큰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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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9월 1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