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규정·통용력 인정 어려운데 위험 발생 가능성 커져
"당분간 규제 나서겠지만 정책 방향 설정에 애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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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가 금융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나 정부는 아직 명확한 정책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외면하자니 이미 현실에서 막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장려하기엔 부작용이 우려된다. 화폐로서 통용력을 인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규제할 근거도 마땅치 않아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전망이다.
세계 금융 시장에선 가상화폐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가상화폐를 받아 들이거나 독자 화폐를 개발하고 제도 보완에 나서고 있다. 철옹성 같았던 각국 중앙은행들도 가상화폐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일본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고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했다. 반면 중국은 이달 초 가상화폐를 발행해 돈을 모으는 신규가상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BTCC는 정부 지침에 따라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비트코인 가격의 지속 가능성에 회의를 품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규정한 글로벌 금융사 CEO의 발언도 화제다.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투자 열기도 높다. 지난달 국내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빗썸의 하루 거래량이 코스닥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자상거래법 상 신고만 하면 되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고, 최근엔 거래소 객장까지 등장했다. 시세 급등락에 따른 투자 손실 가능성이 커졌고, 탈세 등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루 거래량이 조단위에 달하는 시장이 현실화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상화폐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이해나 검토가 부족했고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도 모호하다. 일단은 중국처럼 문을 닫아 걸어두고 상황을 살필 가능성이 크다.
법적으로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에만 부여돼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는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법정 화폐로는 볼 수 없다. 당연히 현행법 상으론 강제 통용력도 인정되지 않는다. 일부 가상화폐를 받는 업체도 생겨났으나 이는 화폐가 아니라 사인간 계약에 따른 지불 수단 성격만 갖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가상화폐를 유가증권으로 간주하고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드러냈다. 특정 투자자와 타인이 공동사업에 금전 등을 투자하고 그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 받는 ‘투자계약증권(Investment Contract Securities)’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계약증권은 우리나라 법에도 기술돼 있지만 가상화폐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당국도 증권발행 형식으로 ICO하는 행위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과거 증권거래법이 자본시장법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투자계약증권 개념도 들어왔지만 실무적으로 사용되지도 않고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사문화된 규정”이라며 “앞으로도 가상화폐가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가상화폐의 모호함은 최근 판례에서도 드러난다. 수원지방법원은 불법행위의 대가로 수취한 가상화폐를 추징하라고 판결했다. 검찰은 가상화폐의 실체성을 인정해 ‘몰수’해야 한다고 봤지만, 법원은 물리적 실체가 없고 객관적 기준가치를 따질 수 없다며 그 수익을 ‘추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최근에야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초기 분석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달 초 관계기관 합동으로 대응방안을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로드맵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단계라 조심스럽게 검토만 하는 상황”이라며 “현금을 가상화폐로 전환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정도가 현재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관리 방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정책 방향 설정에 애를 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나온 것은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적용 범위를 가상통화거래행위까지 넓혀 규율 체계를 마련한다는 정도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 도입을 담고 있으나,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정부로선 거품 붕괴 우려 때문이라도 당분간 가상화폐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한 부분을 이룰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무작정 규제만 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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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9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