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에 더 이상 '래미안'의 자리는 없다?
입력 2017.10.25 07:00|수정 2017.10.26 18:42
    [취재노트]
    • 올해 건설·부동산업계의 화두였던 '강남 재건축' 수주전(戰)이 마무리 돼가는 모양새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지'로 관심을 모았던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5400여가구)와 공사비가 1조원에 이르는 서초구 한신 4지구(3700여가구)는 각각 현대건설·GS건설이 품에 안았다.

      연내에 강남에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지는 ▲강남구 대치쌍용 2차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송파구 문정동 136번지 정도다. 2100여가구로 탈바꿈하는 반포주공 1단지 3주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600여~1300여가구 규모인 중·소형 사업지다.

      서울 금싸라기 땅에 간판을 내걸기 위해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삼성물산의 '래미안'은 보이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지난 2015년 말 서초구 서초무지개 재건축 수주를 끝으로 2년 가까이 칩거 중이다. 수주가 유력했던 서초구 방배 5구역을 현대건설에 내준 뒤, 이후에 있었던 수주전에 모두 불참했다. 삼성물산은 부인하지만, '래미안(주택사업부) 매각설'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복수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있는 상황에서 강남 재건축 수주전에 뛰어들었다가 '삼성이 상품권을 뿌렸다'는 기사라도 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삼성물산이 강남 재건축 사업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특성상 건물 철거 과정부터 완공 후 입주 초기까지 '민원'이 이어진다. 특히 강남 재건축 사업지에서는 상품권 없이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그룹 차원에서는 강남 재건축 사업의 실(失)이 더 크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상 상시 구조조정 체제인 삼성물산 건설부문 직원들은 짐을 싸고 있다.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수주 당시 GS건설 영업 조직에서 중추 역할을 했던 부장급 인력은 삼성물산 출신이다. 삼성물산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관리하던 팀 하나가 통째로 현대건설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문도 떠돈다. 아직 거취를 정하지 않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직원들은 일감이 없어 '몸 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올해 실적 예상치는 매출액 12조2190억원·영업이익 5330억원이다. 건설 부문이 회사 전체 실적의 절반 이상을 책임질 예정이지만, 그룹을 먹여 살리는 삼성전자에 비하면 부담은 덜하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미 삼성물산이 보유한 그룹 계열사 지분 가치를 더 부각한다. 삼성물산을 평가할 때 주안점이 되는 요소는 삼성전자(지분율 4.6%)·삼성생명(19.3%)·삼성바이오로직스(43.4%)·삼성SDS(17.1%) 주식이지, 래미안이 아니라는 평가다. 대부분의 증권가 리서치센터에서도 건설 담당이 아닌 지주사 혹은 제약·바이오 담당 연구원이 삼성물산을 맡는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그룹의 공장 건설 수요에 만족하는 도급사로 전락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내놓는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에서 건설 사업은 돈 안 되고 시끄럽기만 한 천덕꾸러기일 뿐"이라면서 "반도체 공장 등 삼성그룹 내부 시장(captive market) 사업만 수주하다가, 그마저도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면 매각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한화그룹에 매각된 삼성테크윈 등 방산 계열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