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듀레이션 낮추는 방안 금융당국에 건의 중
건전성 대비해 빛 보던 외자계는 신제도 효과 떨어질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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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급여력(RBC)제도 정비 과정에서 국내 생명보험사와 외국계 보험사의 신경전이 감지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 방향에 따라 양측의 자본건전성 수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급여력제도의 필드테스트 결과를 확인한 국내 대형사는 금융당국과 수위 조절에 나섰다. 반면 일찌감치 해외 본사의 건전성 기준을 따라왔던 외국계 보험사들은 국내 대형사 입맛에 맞춘 제도 개선이 불이익으로 작용할까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보험사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에 금융당국도 고심하고 있다.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앞두고 금감원이 지난 7월 진행한 필드테스트는 보험사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자금 소요가 불가피할 것은 알았지만,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와서다. 다수의 보험사들이 현재 자본금만큼의 증자를 하지 않으면 이를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보험사의 RBC비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다.
2018년 초안 발표를 앞두고 보험사들도 활동에 나섰다. 국내 주요 대형사들은 금융당국에 자본 확충 부담이 크다는 점을 알리고, 산정 기준을 예정보다 완화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당국 역시 원칙대로 간다면 이를 감당할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업계의 의견을 모아 내년 초안에 이를 반영할 예정이다.
국내사들은 당초 예정된 보험 부채 듀레이션에 대한 완화를 요구 사항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당초 금감원은 보험계약의 최대만기를 IFRS17에 맞추기 위해 지난 6월 부채 듀레이션 잔존만기 구간을 올해 12월 부터 기존 20년에서 25년으로 늘이기로 했다. 내년 12월 말까진 30년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를 미리 적용해본 국내 대형사는 20~25년 수준에서 유예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보험사가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기준에 따라 자산·부채를 관리해왔던 외국계 보험사들은 국내 보험사의 움직임이 반갑지 않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안정성으로 겨우 투자자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국내사의 기준에 맞추다보면 현재의 기대감이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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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보험사의 경우 해외 본사가 요구하는 국제 기준을 구사해 자산 듀레이션이 부채 듀레이션보다 길어 새 회계기준 도입에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채 듀레이션과 자산 듀레이션 격차가 커져 위험도가 높아지는 국내사들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외국계 보험사의 안정성은 올들어 특히 돋보였다. 국내사들은 신종자본증권, 유상증자로 급히 자금조달을 진행 중이지만, 외자계 중에서는 변경되는 회계 기준을 조기 반영하는 여유도 보였다. 전통적으로 외국계 보험사의 RBC 비율이 좋았던데다 제도 개선으로 장점이 더욱 부각됐다.
변경되는 제도를 미리 적용하는 곳도 나왔다. ING그룹에서 사모펀드로 주인이 바뀐 ING생명은 지난 2분기부터 잔존 만기구간을 30년으로 재산출했다. 그럼에도 회사의 RBC비율은 2016년 말 기준 319%에서 520%로 증가했다. 지난 5월 상장 당시 ING생명은 "지급여력제도를 강화할 경우 오히려 RBC비율이 크게 높아지는 등 규제환경 변화에 최적화된 재무건전성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 바 있다. AIA생명과 ABL생명도 바뀐 규정을 일찍이 도입했다.
투자자도 이에 반응했다. 공모가밴드 초반 수준에서 가격을 확정했던 ING생명의 주가는 최근 5만원까지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높은 배당수익률도 한 몫했지만, 국내 주요 대형사보다 빠르게 새 제도에 적응해 시장 점유율을 늘일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보험사의 한 연구원은 "회사의 강력한 자본력은 향후 시장지배력 확대와 투자이익률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생보사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금융당국이 받아들이면 외국계 보험사의 RBC비율 상승폭이 줄어들 수 있다. 제도를 조기 적용한만큼, 예정대로 규제가 강화되지 않으면 일부 외국계 보험사는 RBC비율이 이전 대비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듀레이션 확대를 예정보다 축소하거나 유예해달라는 국내 보험사들의 요구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금융당국도 난감하다. 보험사들의 요구가 같은 방향성을 띈다면 쉽게 조절할 수 있지만, 국내사와 외국계 보험사의 목소리가 달라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예상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건전성 강화라는 목적 아래 시작한 일인만큼 그 기준을 대폭 완화할 순 없겠지만, (자본 확충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면 국내사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도 금감원 관계자는 업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 측은 "새 RBC 비율 도입으로 보험사 충격이 너무 크면 적기시정조치에 대한 유예 혹은 연착륙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며 "계속 의견을 청취하여 지원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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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1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