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라인 결합에 물류까지 더해
국내 유통업은?
'온라인 100조원 시대' 눈앞이지만
오프라인 업체들은 방향 못 잡아
위기의 이커머스, 투자 유치 절실
신유통 진출? 당장 살기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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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마존에서 시작된 유통 혁명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점령ㆍ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몰락'이라는 단순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오프라인 업체들은 온라인 유통업체에 맞서기 위해 여러 전략을 펼치고 있다. 모바일이 전 세계에 보급되자 오프라인 유통업체들도 온라인 부문을 강화했다. 미국 월마트는 온라인 유통업체와 온라인 기반의 소비재 업체 여럿을 인수했다. 월마트는 “할인점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아마존과 경쟁을 붙을 만큼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업체를 인수하고 있다. 미국의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 홀푸드를 인수했고 오프라인 아마존서점을 열었다. 자체 스포츠웨어를 론칭했고 의약품 시장 진출까지 추진 중이다. 아마존의 바통을 이어 받은 중국 알리바바도 최근 백화점 인타임, 대형 수퍼마켓 체인 리엔화, 가전제품 양판점 쑤닝의 지분을 인수했다. 고성장 중인 온라인 유통업체가 성장이 둔화하고, 심지어 폐점 등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통은 더 이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짓는 것이 무의미하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으로, 온라인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이른바 ‘신유통(New Retail)’이라는 포맷이 대세가 되고 있다. 신유통은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주장한 것으로 오프라인 점포와 온라인 네트워크, 그리고 첨단 물류를 융합한 모델을 뜻한다.
그렇다면 국내 유통업계 상황은 어떨까. 국내 유통시장은 내년 330조원 규모로 올해 대비 약 7% 성장할 전망이다. 성장을 견인하는 업태는 역시 온라인쇼핑이다. 2018년 소매업에서 온라인 쇼핑 판매액이 차지하는 규모는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10% 비중을 넘어선지 5년 만에 비중으로는 두 배, 금액으로는 2.5배 성장하는 셈이다. 온라인 시장 100조원 시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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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바일 채널 성장이 눈에 띈다. 2014년 온라인쇼핑 거래액에서 모바일 채널 판매액은 33% 비중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 이미 PC인터넷 채널 규모를 상회했고, 올해는 60%를 넘어설 전망이다. 2019년에는 온라인 소비의 70% 이상이 모바일 채널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선 모바일 채널에 대한 경쟁력을 보유한 업체가 유통 강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장 특성상 온라인몰 전용 사업자보다 온-오프라인 병행사업자가, 전문몰보다는 종합몰 사업자의 판매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자들이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혜를 확실하게 입을 기업들은 아직까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는 롯데ㆍ신세계ㆍ현대백화점 등이 온라인 시장에 대한 방향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 빅3 역시 온라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실제로 관련 매출 비중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마진이 낮은 상품 위주여서 수익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온라인 부문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 중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룹 내 주도권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잡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지금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수익성을 끌어올리려면 '구조조정' 밖에 없다는 냉혹한 평가도 나온다. 오프라인 체제 안에선 매출이 줄어든 점포를 폐쇄하거나 매각하고, 모든 업태를 한꺼번에 모아 놓은 복합쇼핑몰 위주로 재편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 정도다. 국내 유통업체들이 과거에 부동산을 매입해 개발하는 ‘땅 장사’를 했다면, 이제는 쇼핑몰을 만들어 매장을 파는 ‘임대업자’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SK플래닛의 11번가 투자 유치 사례만 보더라도 롯데와 신세계가 온라인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면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금방 관심을 접진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해외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도 무대는 ‘반도’에 한정돼 있다. 이미 1일 배송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물류 시스템 확보가 얼마나 효율적일지도 불확실하다. 몇 년 전부턴 자체 브랜드 론칭, 인수합병(M&A)을 통한 브랜드 확보 등 소비재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는 있지만 시너지는 아직 기대 이하다. 해외 진출과 자체 브랜드 강화 역시 온라인 부문에 획기적인 인식 변화가 기반돼야 하고 더불어 IT에 대한 이해도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의 아마존ㆍ이베이가 되겠다던 호기롭던 공언(公言)은 말 그대로 공언(空言)이 됐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 1조원을 투자한다고 했을 때만해도 시장의 기대감은 컸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앞세워 몸집을 부풀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배송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손실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곳간이 비면서 추가 자금 투입이 절실하지만 투자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이커머스 업체들은 충성 고객 만들기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하루 이틀이면 배송이 다 되는 상황이라면 결국 가격이 경쟁 요소가 된다”며 “국내 소비자들은 특정 업체가 아닌, 가격 비교를 통해 가장 저렴한 곳에서 구매하는 소비 패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배송 같은 부가 서비스가 특별한 메리트를 주지 못한다”고 전했다.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유통에서 수익은 재고 관리 능력에서 나오는데 대형 오프라인 업체들이 갖고 있는 유통망, 물류창고, 인력 측면에서 아직까지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물류는 전문가에게 아웃소싱하고 대규모 투자금으로 오프라인 소비재 업체를 인수해 ‘여기 아니면 살 곳이 없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자본이 한 없이 부족한 국내 업체들은 투자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쿠팡의 실패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신규 투자를 유치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관련업계에선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성공 사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 업체나 아마존 등 해외 온라인 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처럼 온라인 업체가 오프라인 업체를 인수하는 사례는커녕 회사의 생존 자체가 오늘 내일 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결국 ‘싸고 편한’ 곳으로 가게 되고 여기엔 국경도 없다. 온라인 시장은 더 하다. 기존 유통공룡들이 굳건하던 일본에서조차 아마존재팬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국내 소비자들조차 아마존재팬을 통해 ‘직구’를 할 정도다. 위기감이 커진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업체간 합종연횡을 통한 ‘규모의 경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향후 1~2년간 대대적인 변화는 예고된 상태다.
국내 유통업체들의 성장에서 여론은 또 다른 변수다. 온오프 결합에 물류로 이어지는 ‘신유통’을 꾀할 수 있는 기업들은 사실상 재계에 국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과점, 골목상권 침해 문제 등 첨예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대형화를 눈 감아주긴 쉽지 않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다방면으로 유통업 진출을 꾀하고는 있지만 역시나 이들을 반겨주는 이는 없다. 세계 유통 시장은 다양한 이벤트들로 활력을 되찾고 있는데 반해 국내 유통업계는 경기 둔화와 규제 등으로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는 시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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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2월 1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