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 단계 기업 투자 늘어날 듯
관건은 후속 투자…'밸류 줄다리기'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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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발 벤처 자금줄이 대폭 넓어지면서 '제2의 벤처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팁스(TIPS) 등 초기 벤처 투자금으로 용처가 정해진 벤처자금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초기 단계 기업 투자도 힘을 받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초기 투자자와 후속 투자자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초기 투자자가 팁스를 업고 과도한 지분 권리를 행사하는 등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굵직한 벤처 투자 관련 예산을 잠정 확정했다.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모태펀드에 배정된 신규예산은 3635억원으로 작년 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정부가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 만큼 초기 단계 스타트업(창업 후 3년 이내)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출자사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팁스(TIPS) 프로그램 예산도 지난해 보다 늘어난 1062억원이 새롭게 배정됐다. 팁스는 2013년 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舊 중소기업청)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이다. 민간 투자사가 1억원을 먼저 투자하면 정부가 최대 9억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은 총 10억원을 투자금으로 유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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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벤처·스타트업으로 용처가 정해져 있는 자금이 많아지면서 벤처업계는 벌써부터 기존 초기 투자자와의 가격 줄다리기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일반 벤처캐피탈 업체들은 초기 전문 투자사인 엑셀러레이터나 엔젤 투자사로부터 스타트업을 소개받는 일이 많아서다.
한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극 초기 단계 기업이라 1억원 이하를 투자해야 하는 스타트업엔 엑셀러레이터나 엔젤 투자자가 먼저 투자를 하는데 대부분 팁스로 투자를 받는다"며 "팁스 예산이 늘어나면 팁스로 투자를 받는 초기 기업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 초기 기업 투자를 원하는 창업투자회사들은 대부분 1억원 이하의 엔젤·시드 라운드보다는 5억~10억원 이하 규모의 시리즈A 단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1억원 이하는 투자 건은 규모가 작은 엑셀러레이터나 엔젤 투자사가 주요 참여자다.
문제는 팁스 운용사가 법적으로 투자금의 2배까지 해당 스타트업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A운용사가 B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10억원으로 책정하고 1억원을 투자했다면 10%의 지분을 취득하게 되는데 팁스 운용사로 선정되면 10%의 지분을 더 가져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극초기에 투자한 운용사들이 실제 투자금 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고, 후속 투자 단계에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거나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무의미한 기업가치 줄다리기가 계속되며 투자 적기를 놓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팁스 운용사가 실제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비싼 가격을 요구해 투자가 무산되는 일이 많다"며 "일부 창업투자회사들은 팁스 투자를 받은 기업은 아예 투자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적정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투자를 받을 경우 해당 스타트업과 투자사 모두에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자금 니즈가 계속 증가하는 반면 당초 제시한 목표 달성은 지연돼 후속 투자가 무산될 수 있어서다. 투자자 입장에선 회수 가능성이 줄어드는 셈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디밸류에이션을 할 경우 기존 투자자가 기존 가격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벤처자금이 많이 풀린 만큼 투자를 많이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는 밸류 줄다리기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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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07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