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대우건설 인수자금 가져오라"는 호반건설
입력 2018.02.06 07:00|수정 2018.02.08 10:56
    • 호반건설은 은행권과의 대우건설 인수 자금 조달 협상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시중은행들이 제시한 조건을 제 입맛에 맞게 고쳐나갔다. 신한·우리·KB국민·KEB하나·NH농협은행 등 은행권에서만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고, 이를 검토한 뒤 "이 조건으로 빌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전언이다.

      시중은행들은 0.5~1%포인트가량 하락한 금리에 만족해야 했다. 인수금융업계에서는 5%대 금리가 적정하다고 평가했지만, 호반건설이 4%대를 요구한 결과다. 인수금융을 집행할 때 선취하는 판매 수수료도 지급하지 않기로 했고, 대주단(syndication) 구성에도 일부 제한 요건을 뒀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인수금융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의 소통 방식에 불만을 표한다.

      한 대형 증권사 인수금융 담당자는 "일반적으로는 (호반건설처럼) 일부 금융사에서만 RFP를 접수해 검토, 조건을 통일해 일괄 통지하지 않는다"면서 "금융권을 대상으로 일종의 '갑질'을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대형 증권사 인수금융 담당자도 "호반건설처럼 인수금융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이번에는 금융 비용을 아끼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겠지만, 금융권 내 호반건설의 평판 관리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호반건설이 이처럼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금융권 출신 가신(家臣)들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중규 호반건설 총괄 부회장(전 KEB외환은행 부행장)·최승남 호반건설산업 사장(전 우리은행 부행장)·조억헌 KBC광주방송 대표(전 광주은행 부행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룹 인수·합병(M&A)에 이들을 적극 활용하는 김 회장은 금융권의 생리를 꿰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우건설 인수 자금 조달의 차주로 직접 나선 호반건설의 재무 상태가 건실한 점도 자신감의 근원 중 하나다. 호반건설그룹의 총 차입금 합계는 2016년 말 기준 3443억원. 보유한 현금성 자산(7191억원)으로 전부 상환이 가능한 수준이다. 같은 시기 연결 부채비율이 18.7%로 대우건설(381.7%)·GS건설(298.9%) 등 주요 건설사 대비 현저히 낮은 배경이다. 매출액 대비 이자 및 세전이익(EBIT)도 20%를 상회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주택·토목·플랜트 등 여러 분야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대우건설을 품은 만큼, 호반건설이 이전처럼 금융권을 멀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주택 시장의 신규 분양 물량이 줄어들어 해외 사업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상황. 변동성이 큰 해외 사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금융권을 통한 자금 융통 수요는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그동안 '뒤'를 받쳐줬던 KDB산업은행의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우건설은 작년 9월 말 기준 산은으로부터 4100억원가량을 차입하고 있다. 산은이 이 대출금을 급히 회수하지는 않겠지만, 건설업 전망이 부정적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원활히 차환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것은 단순히 3위권 건설사 인수를 통해 외형 확대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자본시장에서 활동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딜(Deal)에서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달리는 시장 상황을 십분 활용해 유리한 조건을 자금을 조달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은 그 누구도 못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자본시장과의 소통에 더 신경을 써야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는 얘기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용평가업계에서도 대우건설의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재무 융통성 변화 여부를 주요 점검 요인으로 꼽고 있다"면서 "호반건설이 앞으로도 금융권을 대상으로 '오라, 가라'고 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