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의 대규모 유증, 경쟁력·성장성 담보할까
입력 2018.02.06 07:00|수정 2018.02.07 09:29
    1년여 만에 1.5조 대규모 유증 추진
    시황 개선 분위기 타고 수익성 개선 여부가 최대 관심
    경영진 "삼성ENG 합병 없다"…외연확장 제한 우려
    • 삼성중공업의 1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과정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의 시선이 싸늘하다. 오는 5월 유증을 앞두고 주관 증권사로부터 7500억원을 미리 조달하면서 자금 조달에 여의치 않은 상황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유증 이후도 문제다. 경쟁 심화와 원가 부담 증가 등으로 사업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향후 1~2년 안에 또 다시 유증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유가 하락의 여파가 가장 큰 조선사였다. 해양플랜트 인도 연기 요청과 사업 취소가 이어지면서 운전자금 부담이 확대됐다. 지난 2016년말 기준 조선 빅 3 중 수주 물량이 가장 적었다. 삼성중공업은 같은 해 상반기 자구 계획을 수립해 2000여명을 구조조정했고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단행하기도 했다.

    • 삼성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는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은행권에서도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중공업에 1조원가량의 대출금을 내준 시중은행들은 이를 회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익스포저(exposure·위험 노출액) 개념을 도입한 뒤로 '선수금환급보증(RG)을 더 받으려면 대출금을 갚으라'는 입장이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전자단기사채와 기업어음 등 단기 자금 융통으로 만기 도래 차입금에 대응하는 상황이다.

      회사채 5000억원을 포함, 올해 상환해야 하는 시장성 자금은 1조6000억원 규모다. 1년여 만에 1조5000억원의 대규모 유증에 나선 이유도 2~3월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을 갚기 위해서다. 삼성중공업은 현재 보유 중인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여신 상환에 투입했다. 이에 당장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증 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2500억원씩 총 7500억원을 수혈받기로 했다. 유증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확보할 증자 대금을 주관사로부터 미리 당겨받는 방식이다.

      유증의 성공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유증 주관사와 전액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다만 흥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유증이 이뤄지더라도 자금 용도가 차입금 불 끄기에 급급하고, 그 이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년여 만의 유증 추진과 주관사로부터 단기 차입은 현재 삼성중공업의 유동성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이런 회사에 투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작년부터 수주량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수익성을 향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작년 10월말 기준 해양플랜트가 수주 잔고 중 68%가량을 차지한다. 이 시장에 싱가포르 조선사와 대우조선해양이 뛰어들어 저가 수주 경쟁 조짐이 보인다. 작년 9월말 기준 삼성중공업의 매출액 대비 이자 및 세전이익(EBIT)이 1%대 초반에 머무른 것도 이 때문이다.

      동시에 원가 부담은 커지는 추세다. 선박 제조원가에서 35%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는 철강재 가격이 지난 해 상승세로 전환했다. 작년 3분기 누적 기준 철광석 및 후판 수입 단가는 지난 2016년 대비 30% 이상 올랐다. 신조선 가격이 제자리걸음인 탓에 삼성중공업이 최근 수주한 사업의 경우 충분한 수준의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지난 2015~2016년 간 수주가 저조했음을 감안하면 삼성중공업은 오는 2019년까지 '고난의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신용평가업계는 삼성중공업의 진행 공사가 빠르게 감소, 올해 매출이 5조원대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신규 수주 여부에 따라 2019년 매출액 역시 변동될 수 있어 사업 기반이 계속 약화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오르지 않아 수요는 그대로인데 원자재 값은 오르고 경쟁은 심해져 조선업 본연의 수익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삼성중공업은 '이번 불만 끄면 좋아진다'고 하지만, 또 다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1~2년 안에 또 다시 유증에 나설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유증 전에 그룹 차원의 지원 가능성을 미리 배제한 듯한 신호를 준 것도 삼성중공업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전·현직 경영진이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은 것은 실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중공업이 자력 생존해야만 하는 상황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얘기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삼성엔지니어링은 재무 상태나 수주의 질 등이 건실해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설(說)은 대표적인 호재 중 하나였다"면서 "합병 가능성을 일축한 경영진의 발언은 투자자들이 삼성그룹과 삼성중공업의 '절연'을 암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