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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의사결정'
'머리 잘 쓴 정용진'
'신세계의 이커머스 정복'
신세계가 온라인 통합 신규법인의 출범을 깜짝 발표한 지난 29일. 국내 주요 언론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결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통업을 담당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부터 온라인 사업부를 합친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다소 파격적인 얘기라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정 부회장의 돌파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 1위 지위를 고수하는 유통 대기업이 공격적으로 온라인 사업 확장을 예고하면서 이커머스 시장도 빠른 시일 내 재편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신규 법인이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정 부회장의 포부도 과하지 않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이마트와 신세계는 최근 성장 한계에 봉착했다. 반면 각사의 온라인 사업부 매출액은 꾸준히 성장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양사의 온라인 사업부 매출 합산액은 2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신세계는 2023년까지 신규법인이 연매출 10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규법인이 평가받은 가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신세계의 오프라인 장악력과 성장세를 고려하면 다소 저렴하다는 의견이다.
신세계는 사모펀드(PEF)로부터 첫 투자 유치를 받았고 PEF들은 신규 법인에 1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마트와 신세계의 경영권을 고려하면 재무적투자자(FI)들은 적게는 10%, 많게는 30% 수준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신규 법인의 기업가치는 4조~6조원 수준으로 관련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냉정히 말하면 신규 법인에 대한 정보는 상당 부분 베일에 쌓여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대감은 과도해 보인다. 정확한 지분 구조도 알려지지 않았고, 투자금 활용 방안도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벌써부터 '저렴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커머스 경쟁사 쿠팡이 단초를 제공했다. 쿠팡은 이번 신세계 신규법인과 모든 면에서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쿠팡 역시 2015년 소프트뱅크로부터 약 1조원(10억 달러)을 유치한 바 있다. 투자 지분율을 고려하면 당시 쿠팡이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6조원 수준으로, 이번 신세계의 신규 법인이 평가받은 가치와 비슷하다.
쿠팡은 당시 로켓배송을 앞세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라는 글로벌 투자업계 거물의 마음을 얻었다. 하지만 시장은 쿠팡이 '구멍 뚫린 지갑'이 아닐까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쿠팡은 투자 유치 2년만에 1조원을 대부분 소진했다. 자금을 쏟아 부은 로켓배송은 성과보다 적자 폭을 키운 주범이 됐고, 결국 사업 규모를 축소했다. 쿠팡은 2015년에 이어 지난해 적자 규모도 5000억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누적 적자는 1조5000억원을 넘어선다.
신세계는 투자자와 그룹 성향 등을 고려했을 때 쿠팡처럼 무모한 투자를 진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세계는 그동안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에서도 무리하게 자금을 차입하지 않았다. 유보금을 최대한 활용하는 식이었다.
지난해엔 이커머스 확장을 위해 11번가와 티몬 등 대형 이커머스 회사의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자금이 필요한 만큼 효용이 없을 것이란 판단 아래 온라인 통합 법인을 설립하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 같은 경험 아래 투자자들도 신세계가 1조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허투루 쓰진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형성돼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증설, 스마트팩토리 신설 등에 자금이 일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을 담당하는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유통망과 시장 점유율, 성장성 등 모든 면에서 앞서 있어 같은 가격이라면 쿠팡보다 신세계에 투자하지 않겠냐"고 언급했다.
M&A 여부는 관전 포인트로 남았다. 신세계로서는 처음 외부 자금을 활용하는 만큼 용처가 사전에 합의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어피니티라는 글로벌 투자자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시너지도 기대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이례적으로 1조원 투자유치 소식을 알린 것도 어떤 타깃을 정해뒀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협상 관계가 상당 부분 진전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쉽게 말해 쿠팡의 1조원보다 신세계의 1조원이 더 커보인다는 얘기다. 국내 굴지의 유통 대기업이 깐깐하면 깐깐했지, 그 큰 돈을 허투루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국내 투자금융업계의 관성적 시각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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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2월 04일 09:00 게재]
입력 2018.02.19 07:00|수정 2018.02.20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