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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2015년)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리를 했고, 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이 담당했다" 라고 방어를 해본들. 감독당국에 쏟아지는 비난은 어쩔 수 없을 전망이다. 1년3개월 전에도, 지금도, 모두 같은 사안이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를 관리할 주체도 사실은 감독당국이다.
차이점은 정권이 바뀐 점이다.
어쨌든 지금 설정된 프레임은 "삼성이 분식회계를 했느냐, 아니냐"다. 그래서 "콜옵션 행사도 되지 않았는데 가정한 것이 적절했느냐", "지분가치를 시가로 평가한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 등의 각종 논란이 쏟아진다.
또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코멘트와 회계적 지식을 동원한 대규모 반박도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적법절차를 철저히 준수한 삼성은 "현행규정 모두 따랐고 회계법인 3곳서 평가도 받았는데 왜 문제 삼느냐"라고 반박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논리는 뚜렷하고 명쾌하다. "2015년에 삼성바이오에피스 개발성과가 가시화됐고 앞으로 돈을 벌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바이오젠(Biogen)이 콜옵션을 행사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바이오에피스를 연결재무에서 제외,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분류했다. 회계법인들도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상장 규정에 따라 상장했을 뿐이다."
다 맞는 말이다. 국제회계기준을 준용해 연결재무제표 작성 근거를 담은 '기업회계기준서 제1110호' 등에는 지배회사와 종속기업의 관계를 '지배력'(Power)이란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지분율이 몇%이상이어야만 종속기업이라는 의무조항이나 숫자도 없다.
삼성물산의 방어논리도 그 연장선상이다. "제일모직ㆍ(옛)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9월에 이뤄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는 2015년말이다. 시계열로 보면 순서가 맞지 않다. 따라서 삼성바이오 회계처리가 삼성물산 합병비율 산정에 영향을 줬다는 (참여연대 등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합병비율은 정당하게 산정됐다"
그러나 이런 회계분식 프레임 논란으로 흐려지는 부분들이 있다. 정작 이번 사태를 야기한, 그리고 의구심들을 산출한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첫째, 회계분식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의 핵심은 '콜옵션 가정', '관계사 분류','시가(Fair Value)평가'가 아니다. 공개된 현행 규정만 따져봐도 이 부분들이 잘못됐다고 문제삼기는 어려워 보인다.
진짜 관건은 삼성이 확정되지 않은 미래현금흐름 할인법(DCF)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즉 삼성이 바이오에피스를 두고 "지금은 적자지만 앞으로 돈을 벌거니까 조단위 회사입니다"라고 가정하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
일례로 상장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영업이익률을 전망하면서 설정한 가정은 무려 -24.1%에서 +57.4%까지로 그 범위가 광대했다. 또 영업수익 성장률은 최저 -1%에서 최대 105.3%라고 했다. 쉽게 말해 "시기에 따라 아예 돈을 못벌수도 있고 떼돈을 벌수도 있고.."라는, 거의 무의미한 가정들이다.
그러잖아도 DCF 방식은 이미 사업성과가 뚜렷한 동일 시장내 유사기업(Peer Group)과 확고한 시장 전망이 있어도 가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서 투자업계에서는 신뢰도가 낮게 평가받아 왔다. 일례로 "달러/원 환율을 10년간 변함없이 1000원"이라고 가정하거나, "경쟁사가 2년뒤 망할 것"이라고 가정하거나, "시장 규모가 3년뒤 2배로 늘 것"이라고 가정하거나. 집어넣을 수 있는 변수와 방법은 부지기수다.
게다가 똑같은 바이오에피스 지분을 놓고 삼성이 '조단위'라고 선언할 때 다른 주주였던 바이오젠은 장부에 '0원'이라고 기록했다. 그것도 콜옵션 가치 뿐만 아니라, 기존에 바이오에피스에 출자한 투자금액 전액을 모두 0원으로 기록하고서 2016년 재무보고서(Form 10-K)를 미국증권거래소에 냈다. 당사자이기도 한 바이오에피스는 향후 이익에 대한 자신감 부족 때문인지 이연법인세 자산 인식이 어렵다고 봤다. 결국 바이오에피스 가치에 대한 평이 당사자들끼리도 서로 달랐다는 얘기다.
둘째,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다.
하필이면 이런 장부반영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있는 딱 그 해에 실행됐다. 즉, 마침 그 해에 공교롭게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장사가 잘 될 것 같아서 콜옵션을 가정했고, 이를 장부에 반영했다. 다시 공교롭게도 이렇게 장부를 처리하고 나니 제일모직 최대주주이자 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구조가 됐다. 모든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의도성' 혹은 '고의여부'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삼성물산이 시계열상 후순위라 주장은 하지만 이것도 표면상으로는 1년에 한번인 연말기준 '감사보고서' 기준일 뿐이다. 바이오로직스도 2015년말 연결감사보고서에 "당기 중 시가평가를 했다"라고 기록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인지는 적시하지 않았다. 또 제일모직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실행되기 직전인 2015년 6월 '반기검토보고서'까지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3%를 장부가액 4787억원으로만 기록해 놓았다. 그러다가 합병 전후로 지분율이 조금 늘어났다며 갑자기 '공정가치'를 반영했다. 이때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도 되기 전인데도 '시가' 혹은 '공정가치'를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미래에 돈을 많이 벌 것이다"라는 가정이었다.
셋째, 이런 가정법이 비상장사에 국한된 것이라면 별 문제 될 것 없다. 자기들끼리만 가치를 선언하고 주장하는 것이니 '외부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합병 시기에 장부에 실행됐다. 그리고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주주들이 나오고 있다. 해외 투기자본 '엘리엇'이어서가 아니라 '옛 삼성물산의 주주'들이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또 공모형태로, 대중적으로 자본을 모으는 상장 과정에서 이 주장이 다시 설파됐다. 물론 그렇다고 삼성이 딱히 '사실'을 숨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 각자의 판단과 책임을 강조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 자본시장은 외부 자본조달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에 유달리 까다롭게 굴어왔다. 우리 감독당국이 특히 그랬다. 그래서 다른 국내 기업들은 자본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증권신고서를 고쳐내야 했고, 위험부담을 매번 다시 기입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겪었던 국내 기업들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삼성이 유리해보였던 건 부인하기 어렵다.
넷째, 이 모든 상황이 문제 없다고 쳐도 기존 상장 규정으로만으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은 불가능했다. 제 아무리 4조원, 5조 지분 값어치를 주장해도 '적자가 나는 기업'이기 때문. 여기서 또 한번 '공교롭게'가 등장한다. 마침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이 있는 그 해에 상장 규정이 완화됐다. '적자기업'이라도 시가총액(6000억원), 자기자본(2000억원)이 많으면 통과시켜주겠다는 규정이다.
물론 삼성이 완화해달라고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한국거래소 등이 나섰다. 한국의 우수한 기업이 나스닥에 가서 상장하지 않고 국내에 상장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규정도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어찌보면 한국만의 특이한 상장규정이었다. 2015년 기준 미국ㆍ일본ㆍ중국ㆍ싱가포르ㆍ대만 등 주변 해외 거래소 가운데 '적자기업도 상장'이 가능한 조항이 벤처기업 등이 상장하는 코스닥과 유사한 2부 리그가 아닌, 1부 리그에 도입된 경우는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 "상장하려면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더 강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적자임에도 불구, 거래소 덕분에 1부 리그 상장이 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상장 규정을 완화해준 한국거래소가 이번 사태로 '상장폐지 여부'를 따져봐야 할 상황이 처했다. 현행 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제48조 및 49조, 기타 관련세목)에 따르면 회계기준 위반으로 금융위ㆍ증선위가 검찰에 고발하거나 검찰이 기소한 기업은 위반금액 등을 따져 주권 상장 폐지가 가능하다.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에 해당된다.
갖가지 논란에도 불구, 가장 관심사는 "그래서 예상가능한 결론이 무엇이냐"다.
사실 시나리오는 그닥 많지 않다. 일례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폐지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드물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재계 순위 상위권인 SK그룹이나 LG그룹 상장사 시가총액들보다 한때 높아질 정도였고 돈을 댄 투자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 이른바 '대마불사' 논리다. 오히려 섣불리 회계부정을 발표한 금융감독원 때문에 주가가 떨어져 감독당국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과징금도 최대 20억원에 그친다. 현행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회계부정 과징금 규모가 최대 이 정도에 그친다. 작년 10월 외감법 개정에 따라 회계부정으로 인한 위반금액이 늘었지만 올해 11월부터 시행이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는 소급적용되기 어렵다.
'회계 부정' 프레임의 한계는 여기서 또 한번 드러난다. 그러니 이번 사태가 미칠 영향을 두고 결국 이재용 부회장 3심 재판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이들도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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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5월 03일 20:25 게재]
입력 2018.05.04 07:00|수정 2018.05.08 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