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회장 물러나고 이사회에 맡긴다 했지만 이사회도 '마비'
경영 정상화 불가능...피해는 고스란히 주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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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진에어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지만 진에어의 독립 경영은 요원할 전망이다. 특히 경영진을 감시·감독해야하는 사외이사가 직접 조현민 전 전무의 변호에 나서는 터라 말뿐인 독립경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월1일 9시 56분, '물벼락 갑질' 논란으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석했다. 조 전 전무의 차가 수십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인 가운데 조 전 전무가 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에스코트까지 한 인물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인 박은재 율촌 변호사다.
조 전 전무가 취재진이 사전에 만들어 둔 포토라인에 서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할 때에도 박 변호사는 조 전 전무의 뒤를 지켰다. 박 변호사는 최근까지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함께 조양호 회장의 자택공사 비리 사건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조 회장 일가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다.
오너 일가 변호사가 동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박은재 변호사가 진에어 사외이사라는 점이다.
'사외이사'에 요구되는 역할은 오너와 경영진의 배임 또는 방임에 대한 제어와 견제다. 따라서 해당 회사나 오너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배제되는 일이 많다. 그래도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경우는 이사회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와 2014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 재직해 온 박 변호사는 현재 진에어 사외이사-내부거래위원-감사위원을 맡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사외이사로 재직, 2년 뒤인 2020년 8월까지 해당 업무를 맡는데 그간 한진그룹의 형사변호와 관련된 업무를 적지 않게 맡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진에어는 로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고용하고, 해당 변호사가 오너 일가의 형사 변호까지 담당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거수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같은 이유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진에어의 대표이사에서 사임한다고 밝히며 내세운 '독립경영'과 '전문 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체제 강화'도 구호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비단 박은재 변호사 뿐만이 아니다.
진에어는 총 3명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데 또 다른 이는 법무법인 광장의 곽장운 변호사다. 법무법인 광장은 조양호 회장의 매형인 이태희 변호사가 설립한 회사다. 그동안 조 회장 일가의 소송에도 자주 참여해 왔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일감을 자주 주는 로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고용한 상황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사적인 문제도 아닌 탈세와 배임 횡령 등 기업의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인데 사외이사가 직접 나서 오너일가를 방어하는 것은 방임"이라고 지적했다.
대주주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오너 일가 형사변호를 담당할 정도로 오너 일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 모든 피해는 주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진에어는 저가항공(LCC)업계가 올 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 오너 리스크로 인해 주가상승 수혜를 입지 못했다.
회사 측은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진에어는 사외이사의 조현민 전 전무 형사 변호와 관련해 "회사와 관계 없이 조현민 전 전무 개인적으로 선임한 건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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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5월 14일 17:2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