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증자 시 최대 5000억 지원해야
계열사 지원에 발목잡힌다 부담 때문으로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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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의 유상증자 진행 여부가 시장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조달 환경이 좋아지며 복수의 증권사들이 제안서를 들고 두산그룹을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두산중공업은 "발행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주회사인 ㈜두산도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이 대규모 증자에 나설 경우 ㈜두산의 자금 소요가 큰데다, 아직 계열사의 자체 체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탓으로 분석된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국내외 증권사들은 두산그룹에 두산중공업의 대규모 증자를 제안하고 있다. 두산그룹이 자금을 조달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판단에서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등 자회사의 실적이 개선되며 중공업의 연결 실적도 증가했다. 앞서 진행한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증자에 성공하며 중후장대 기업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남북 경협주로 두산 계열사가 주목을 받고 있어 흥행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다수의 증권사의 권유에도 불구, 두산그룹은 부정적인 반응이다. 일단 최대주주인 ㈜두산이 부담해야 할 지원금 규모도 다소 크다. 또 주요 계열사들의 체력이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지 않아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 두산그룹에 제안한 유상증자 규모는 1조원 수준이다. 대규모 증자를 진행할 경우 최대 주주인 ㈜두산의 부담이 가장 크다. 기존 주주들이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공모 방식을 선택할 경우 기존 주주들의 반발은 물론, '최대주주도 버렸다'는 심리가 작용하며 소액주주들의 투자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두산은 1분기 말 기준 두산중공업의 지분 36.82%를 보유 중이다. 두산중공업의 증자 규모가 1조~1조5000억원에 이를 경우 ㈜두산이 부담해야 하는 예상 지원액은 적게는 3000억원, 많게는 5000억원에 이른다.
앞서 1조4000억원을 공모한 삼성중공업의 경우 계열사들이 전방위로 지원한 덕분에 증자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17%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2040억원을, 삼성생명과 삼성전기가 각각 400억과 280억원을 삼성중공업에 투입했다. 지분율이 적은 삼성SDI와 제일기획, 삼성물산도 소액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1조2300억원을 모집한 현대중공업 역시 현대중공업지주와 우리사주의 적극적인 참여로 증자에 성공했다. 당시 중공업 지분 약 2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지주는 3400억원을 지원했다.
지원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산은 자체 사업부문(BG)의 고른 성장으로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27%와 23% 증가했다. 중공업·인프라코어·건설·엔진 등 주요 계열사 실적이 모두 반영돼 4년만에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다만 계열사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은 ㈜두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계열사의 현금 창출력이 약화하면서 두산중공업과 디아이피홀딩스 등 주요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이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두산과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 등 부실 계열사를 주도적으로 지원해왔다. ㈜두산은 두산중공업과 함께 2016년 두산건설로부터 분당 부지와 두산큐벡스 지분을 매입했다. 두산중공업이 전환상환우선주(RCPS) 발행으로 계열사 지원 여력이 줄어든데다, 수주 약화가 우려되면서 ㈜두산의 계열사 지원 부담은 확대됐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가 혹시 실현된다면 ㈜두산이 앞장서서 지원해야 하는 규모도 상당해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고민이 될 것"이라고 언급됐다.
최근 두산그룹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변화한 점은 긍정적이다. 최근 두산건설은 70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성공했고, 두산인프라코어가 개선된 실적을 기반으로 4년만에 회사채 조달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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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5월 2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