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생산력은 뛰어난데
주주 대응력은 한참 '후퇴'
'글로벌 주식회사' 인식 부재
구태적 기업 문화 등이 원인
성장성 내세운 주주 달래기
일방통행 대응 더는 안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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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이어 현대자동차까지, 한국 대표 기업들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잇따라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번 현대차의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합병 실패 사례로 '전개방식'도 정형화됐다. 기업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호소하지만 주주들은 '오너를 위한 거래'로 받아들인다. 거래 구조는 불합리하다고 비판 받고, 자문사들이 '반대' 성명을 낸다. 행동주의 펀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회사가 뒤늦게 대응책을 이것저것 내놓지만 주주들을 설득하지도, 호의를 얻지도 못한다.
외신들의 냉정한 평가는 이 부분에서 국내 기업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블룸버그(Bloomberg)는 현대차 사례를 두고 "재벌이 추한 거래를 정당화하려고 보잘 것 없는 가정법을 도입했다(The chaebol is using tenuous assumptions to justify an ugly deal)"라고 평가했다. 현대차의 가치평가 방식에 "제 눈에 안경인 모양새(More often than not,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where valuations are concerned)"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뉴욕타임스 딜북(Deal Book)은 "엘리엇이 현대차를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한 마지막 재벌(one of the last chaebols)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며 "이번 거래는 결국 정몽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거래"라 분석했다. 8년 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 "옛 현대그룹 제국 향수에 취해 벌이는 일"이라고 비판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어쩌다 이런 취급까지?....변하지 않은 소프트웨어
삼성전자, 현대차 등 자랑스런 우리의 기업들은 기술력이나 생산능력, 판매량과 브랜드 파워에서 막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지 오래다. 전 세계에서 이들의 제품을 찾기 어렵지 않다. 각국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현대기아차는 미주·유럽·아프리카 대륙을 달리고 있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졌다.
하지만 주주들을 대하는 시각이나 인식, 대응 능력만큼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글로벌 주식회사라는 자각, 그리고 변화된 시장 환경에 대한 경험과 전략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수십년간 바뀌지 않은 기업문화도 거론된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활동하다 현대차 글로벌홍보 담당 상무를 지낸 프랭크 에이렌스가 '현대자동차 푸상무 이야기'에서 그린 상명하복과 군대식 문화다. 그러니 "하드웨어는 글로벌, 소프트웨어는 로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주주들의 입김은 더욱 강력해졌다. 주주 파워를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커졌고, 주주들의 성향도 크게 바뀌었다. 요구사항도 날카로워졌다.
오랫동안 이런 주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너의 고집'에 묻혀 주주 이익과 무관한 결정이 반복됐다. 주주들이 '불신'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주들은 기다려 주세요"...언제까지?
그간 국내기업들이 주주들을 설득하는 논리는 거의 항상 '성장성'이었다. 주주들은 우리 기업 특유의 역동성과 발빠른 성장세를 선호했다. 이에 기업들은 "더 많은 성장을 위한 투자 중이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얘기했다. 주주들도 호응했다.
그런데 그 성장세의 가파르기가 예전만 못해졌다. 스마트폰은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서 플래그십 모델의 판매량은 줄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전세계 자동차 수요 성장률 둔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성장 속도는 줄고 사업별 리스크는 커지는 상황. 더 이상 미래의 과실을 기다리지 못하고 주주들은 "그간 벌어들인 과실을 나누자"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재벌의 특수성과 '과거에 대한 향수'가 등장했다. 그리고 오너 일가의 승계 문제와 함께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승계에 대한 이렇다할 합리성이나 정당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성난 주주들이 등장할 상황으로 변했다.
다급해진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고, 배당을 늘리는 식으로 화답하는 모양새는 취해 왔다. 그러나 '주주=단기투자자' 수준의 인식은 여전해 소통은 없었고 방향성은 일방통행이었다. 심지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압박에는 최소한의 대응이라도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을 대상으론 그렇지 않다는 '역차별 논란'까지 제기됐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이 틈새를 이해했다. 공격 포인트는 날카로워졌고 외국인 주주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 민감할 때마다 '눈 가리개'를 썼던 국내 기관들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외국인 vs 국내 기업'이라는 해묵은 대결구도가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국내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이 논란거리가 되고나서부터 국내 기관들의 운신 폭도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 기업들이 주주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진짜 목적은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작업인데 주주들에게는 믿지 못할 청사진과 더 좋아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만 제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기업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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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6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