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래지는 '거래액' 지표…"0.3배에서 2.5배까지"
추가 투자 필요한 업체들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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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3년여간의 시도 끝에 11번가 투자 유치를 끝냈다. 기업가치를 3조원 후반으로 고수해 온 SK측이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차례 투자유치에 실패해온 만큼 SK도 애초 눈높이를 유지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다.
투자은행(IB)업계는 이번 투자유치가 11번가뿐 아니라 쿠팡·티몬·위메프를 비롯한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미칠 후폭풍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이커머스 투자에 11번가 사례가 새로운 기준이 될 경우, 경쟁사들의 투자 유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SK플래닛은 지난 19일 11번가 사업부를 인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한 후 H&Q를 통해 5000억을 투자받는 안을 확정해 최종 공시했다. H&Q가 확보하는 11번가 신생 법인 지분은 18.2%다. 이를 고려할 경우 기업가치(Value)는 약 2조7000억원 수준이다.
쿠팡·위메프·티몬 등 소셜커머스와 11번가 등 오픈마켓을 포함한 이커머스 업체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전통적인 ‘손익계산서’ 대신 총거래액(GMV)을 주요 투자 지표로 제시한다. 시장 선점 과정에서 대부분 업체들이 적자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등 기존 지표를 통한 기업가치 산정은 불가능하다.
한 스타트업 자문 전문 로펌 변호사는 “현재로선 손에 잡히지 않는 각 업체의 플랫폼 장악력을 파악하려면 전체 이커머스 시장 누적거래액 대비 각 사의 거래액을 비교해 가치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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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는 투자유치가 한창이던 지난해 이례적으로 거래액을 시장에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발표한 상반기 거래액은 4조원 수준으로, 업계에서 11번가의 지난해 거래액을 9조원 수준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이를 고려할 경우 거래액 대비 회사의 기업가치 배수는 0.24~0.3배 수준으로 측정된다.
이커머스 업계 ‘출혈 경쟁’의 시초가 된 지난 2015년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우선 당시 화제였던 쿠팡 투자의 경우 소프트뱅크가 전환상환우선주(RCPS) 형태로 지분 21.83%를 확보하며 투자한 금액이 1조1000억원 수준이다. 이를 반영했을 때 당시 기업가치만 5조원이다. 쿠팡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투자 직전해(2014년) 연간 거래액이 2조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거래액 멀티플은 무려 2.5배가 넘는다. 현재 수준(2017년 기준) 연간 거래액 4조원을 반영해도 1배 이상이다.
당시 3사 중 매출기준 3위에 그쳤던 위메프의 경우도 11번가 대비 높은 수준의 멀티플을 인정받았다. 넥슨의 지주사 NXP가 2015년 신주발행 형태로 위메프 지분 13%를 인수하며 지급했던 금액은 1000억원이다. 이를 토대로 가치평가를 할 경우 당시 위메프의 기업가치는 7692억원 수준이다. 위메프가 공식적으로 집계해 발표한 거래액(GMV)이 1조60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멀티플은 약 0.48 수준이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투자유치를 시도해 온 SK측은 높은 콧대를 유지했다. 지난 2016년엔 IMM PE,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 스틱인베스트먼트,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 등 내로라하는 PE들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탈락했다. 당시 PEF들은 11번가의 기업가치를 최대 3조원 수준으로 평가했지만, 3조원 후반 수준의 기업가치를 자신해 온 SK측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민생투자'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해 계약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지난해 신세계-롯데와의 협상 때만해도 SK측에서는 “‘거래액의 절반’ 수준의 가치평가는 받아야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기도 했다. 결국 수차례 협상 실패를 겪어오며 점차 기업가치가 현실화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11번가의 이번 기업가치 평가가 향후 이커머스 업계 투자 유치에 미칠 영향이다. 이번 밸류에이션 평가가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
경쟁사인 소셜커머스 3사도 지속적으로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거래액이 매년 증가하며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주요 이커머스사들의 적자 규모는 확대하고 있다. 3사 모두 자본잠식에 빠진 상황에서 외부 투자 유치를 통한 호흡기 없이는 장기간의 적자를 버텨내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존처럼 총거래액 지표 하나 만으로 5조원에 육박하는 기업가치를 증명해내긴 쉽지 않다는 평가다. 결국 각 사가 11번가 등 경쟁사와 어떤 차별점을 갖췄는지 증명해 내야 하는 점이 가치 평가에 숙제로 남았다.
온라인 사업을 통합한 후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인 롯데와 신세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재 양 사의 온라인 사업 거래액은 각각 8조원, 2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BRV캐피탈매니지먼트와 어피너티로부터 1조원 규모 투자 유치를 두고 협상중인 신세계가 곤혹스러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과거 쿠팡 등 소셜 커머스 업체들이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받아온 점을 고려해 신세계 온라인 사업의 가치 평가에 민감해 하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11번가 기준이 일반화하면 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11번가도 우여곡절 끝에 5000억원 규모 수혈에 성공했지만, 추가 투자 유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SK플래닛의 당기순손실만 51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년이면 소진할 수 있는 금액이다. 여기에 더해 SK 측은 재무적투자자(FI)인 H&Q 측에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Drag-along) 조항을 부여했다. 후속 투자를 집행할 투자자들은 최대주주인 SK뿐 아니라 2대 주주와도 계약 조건을 둔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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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6월 20일 16:5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