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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원 한남의 88평형 분양가는 약 53억원. 8년 먼저 지어진 한남더힐보다 8억원 저렴하게 분양합니다. 임대 기간이 지난 4년 뒤에 한남더힐의 현재가(61억원)에만 팔아도 1년 2억원씩의 수익을 남기는 셈입니다. 한남동 부동산 가격은 오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니, 계약자들이 누릴 시세 차익은 더 크겠지요." (한 시중은행 부동산금융 담당자)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지어지는 고급 주택 나인원 한남은 투자 상품으로서 장점을 두루 갖췄다. 시세 대비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어 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 이익(Capital Gain)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투자자들이 지는 리스크는 거의 없다. 만약 경제위기라도 발생해 가격이 하락할 경우 임대 계약자들은 임대 기간(4년)이 끝난 뒤 퇴거를 택하면 된다. 수수료 한 푼 내지 않고 임대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나인원 한남이 이처럼 완벽한(?) 구조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있다. HUG는 나인원 한남의 분양 보증 신청을 거절, 시행사 대신에프앤아이(F&I)의 선(先)분양을 막았다. 대신F&I가 제시한 분양가 6360만원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였다. 분양 보증을 얻지 못한 대신F&I는 '임대 후 분양'으로 선회했다. HUG는 임대 후 분양 단지의 분양가는 규제하지 않는다.
이러면서 나인원 한남이 최근 한 달여 간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와 언론 지면에 수 차례 오르내렸다. 부동산에 관심 좀 있다는 투자자들도 나인원 한남의 시세 차익 예상치 등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 중 나인원 한남에 '접근 가능한' 투자자는 일부에 불과했다.
나인원 한남은 임대 보증금 33억~42억원 전액을 직접 조달할 수 있는 투자자만 계약이 가능하다. 오는 8월까지 계약금 20%를, 내년 8월까지 중도금 39%를 납부해야 한다. 나머지 41%는 입주하는 내년 말에 치른다. 중도금 대출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의 대출 보증을 제한하고 있어서다.
HUG는 '과도한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안정적인 투자 수익이 예상되고 가격 하락 위험은 없는 우수한 상품에 투자할 기회는 결과적으로 현금 부자들에게만 열어준 셈이다.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나인원 한남 임차인 모집일에 가용 자금 7조원이 몰렸다'는 보도를 접하며 열패감을 느껴야 했다.
이 같은 '로또 청약'이 처음은 아니다.
올 3월 분양한 디에이치자이 개포(개포 주공 8단지 재건축), 과천 위버필드(과천 주공 2단지 재건축)도 상황은 비슷했다. HUG의 분양가 제한 때문에 분양가가 인근 단지 시세보다 평당 700만~1200만원가량 저렴하게 책정됐지만,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해 투자 접근성이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현금 동원력을 갖춘 청약자들은 당첨 즉시 수억원의 평가 차익을 얻었다.
한 경제연구소 금융 담당 연구원은 "정부와 HUG가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현금 부자들만 알짜 단지 청약에 성공, 부동산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면서 "당초 취지와 달리 시장 경제에 반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시장 양극화를 심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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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7월 16일 16:28 게재]
입력 2018.07.19 07:00|수정 2018.07.20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