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다음 한국?…서울서 빌딩 쇼핑하는 해외 '큰손'들
입력 2018.08.03 07:00|수정 2018.08.03 10:10
    센트로폴리스·삼성물산 사옥 등 손바뀜
    PEF·자산운용사 등 해외 기관 적극 참여
    광화문 등 업무지구 성장성 있다는 판단
    "일부 기관 LTV 과도" 가격 상승 경계도
    • 해외 '큰손'들이 한국 상업용 부동산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자산운용사 등이 서울 핵심 지역의 오피스(Office) 빌딩을 중점적으로 매입하는 중이다. 세계 부동산 투자 유동성이 미국과 유럽을 지나 한국을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보험사 푸르덴셜생명의 자회사 M&G리얼에스테이트는 이달 중순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빌딩을 1조1200억원에 매입했다. 평(3.3㎡)당 2700만원대로 본 계약을 체결했으며, 오는 9~10월 중 잔금 납입해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해외 기관투자자의 관심이 컸던 이 오피스 빌딩은 앞서 미국계 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이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협상 진행 중 이견이 생겨 M&G리얼에스테이트로 매수자가 바뀌었다. 이 빌딩 인수전(戰)에는 다른 미국계 PEF 운용사인 블랙스톤도 참여했다.

      서울 중구 회현동 AK타워도 해외 기관투자자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 달 치러진 본 입찰에서 일본계 노무라이화자산운용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빌딩 역시 영국계 PEF 운용사 스탠더드차타드 프라이빗에퀴티(SC PE)를 비롯해 홍콩계 PEF 운용사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 영국 부동산 컨설팅사 존스랑라살(JLL)의 자회사 라살자산운용 등 해외 기관투자자 다수가 인수를 검토했다.

      지난 3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내놓은 광화문 사옥은 독일계 도이치자산운용이 매입했다. 또 작년 하반기에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해 지난 4월 매각이 끝난 KB국민은행 명동 사옥도 미국계 부동산 투자사 안젤로고든이 인수했다.

      해외 기관투자자가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경쟁 끝에 한국 기관투자자에게 내준 경우도 있다.

      삼성물산 서초 사옥 매각에도 해외 기관들이 우르르 참여했다. 지난 달 치러진 본 입찰에는 블랙스톤과 싱가포르계 부동산 투자사 메이플트리를 포함, 50여개 기관투자자가 입찰 제안서를 냈다. 20여일 간의 평가 끝에 NH투자증권·코람코자산신탁 등 국내 기관투자자가 승기를 쥐었다.

      SK증권빌딩·더케이트윈타워도 비슷한 사례다. 올 상반기 SK증권빌딩 본 입찰에는 노무라이화자산운용 등이 참여했으나 최종적으로는 KB자산운용이 뽑혔다. 또 더케이트윈타워는 싱가포르계 아센다스자산운용이 인수 의사를 밝혔으나 삼성SRA자산운용이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됐다.

      서울에서 오피스 빌딩 시행에 나선 해외 기관투자자도 있다. 더케이트윈타워 인수에 실패한 아센다스자산운용이다. 아센다스자산운용은 교원그룹으로부터 서울 중구 수표동 '장교구역 제12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사업시행계획을 넘겨 받았다. 이 부지에 17층 규모의 오피스 빌딩을 지어 임차인을 모집한 뒤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서울 내 주요 업무지구 오피스 빌딩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低)평가돼있다고 판단한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M&G리얼에스테이트는 센트로폴리스 매입 대금 중 62.5%에 이르는 7000억원을 직접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광화문~을지로 등 도심 업무지구(CBD)와 여의도 업무지구(YBD), 강남 업무지구(GBD) 등 서울 내 주요 업무지구의 경우 임대 수입(Income Gain)이 클 뿐만 아니라, 매매 차익(Capital Gain)도 거둘 수 있다고 내다본다는 것. 해당 지역에서 한 자릿수 후반~두 자릿수 초반의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미국 대비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기에도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이달 중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8개월째 동결하면서 시장금리마저 미국보다 낮아진 상태다. 부동산에 익숙한 한국 금융회사들은 선(先)순위 담보대출에 특별히 높은 금리를 요구하지도 않아 투자 여건이 긍정적이라는 얘기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 통화 정책을 정상화하면서 유동성을 회수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 풀린 돈은 여전히 많다"면서 "자본력이 탄탄한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한국 오피스 빌딩이 아직 저렴하다고 판단, 점점 더 높은 입찰가를 써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다른 관계자는 "경제성장률 등 한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주요 업무지구라도 공실률 상승과 실질 임대료 하락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면서 "한국 오피스 빌딩 매입에 담보인정비율(LTV)을 높은 수준까지 사용하려는 일부 기관투자자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적정 입찰가 책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