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간 빈익빈 부익부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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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를 비롯해 국내 금융사들이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는 시큰둥하다. 기술력에선 중국 등에 뒤쳐지지만 밸류에이션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기업은 리스크가 크고,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의 몸값은 맞출 수 없다는 게 업계 현실이다.
국내 벤처투자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몇몇 회사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부르는 기업가치가 곧 시장가치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들이 터무니없는 가치를 받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일례로 흉터치료제를 개발하는 한 국내 바이오사는 상장 이후 시총이 4000억원에 이른 반면,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업체의 경우 기업가치가 몇백억 수준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매출만 나와도 유니콘 행세를 하는 기업도 많다.
또한 이들 업체들은 까다로운 금융사들의 투자는 별로 선호하지도 않는다. 특히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투자의 경우 투자자들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안해도 꺼려한다.
일부 금융사들은 국내사보다 베트남 기업 프리 IPO에 오히려 눈을 돌리고 있는 판국이다. 국내 스타트업 중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라고 해봐야 카카오 정도고 이마저도 최근 글로벌 경쟁력이 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 정도가 벤처금융부를 만들어서 스타트업 투자나 해외 투자자와 국내 스타트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 국내 증권사 투자담당자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 메리트가 없다 보니 중국, 베트남 등지로 투자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라며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는 정책자금만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차치하더라도 중국, 이스라엘 기업만 하더라도 엑시트 목표가 이미 글로벌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미국 나스닥 상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스타트업 중에서 글로벌 기업에 인수된 사례도 드물거니와 국내 상장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금융사 입장에선 투자 후 엑시트 구조가 불분명 한 곳에 투자할 유인이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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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이 비운 자리는 정책자금이 채우고 있다. 각종 벤처펀드에 출현하는 정부 자금이 커지면서 내년 중소벤처기업부 1년 예산이 사상최대치인 10조원을 넘어선다. 다만 이 자금이 정말 자금이 필요한 초기기업으론 흘러가고 있지 못하다는게 문제다. 정부 주도의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거두기 위해 위험한 투자는 꺼려한다. 초기 기업 투자에 섣불리 나섰다가 투자금 회수에 실패하면 정부 자금을 다시 받는 일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주체가 되는 벤처캐피탈(CVC)도 별반 다르지 않다. 카카오의 CVC 조직인 카카오벤처스도 투자 대부분을 전환상환우선주(RCPS) 중심의 안정적인 채권형 투자에 집중한다.
현재와 같은 산업구조가 이어질 경우 4차 산업 분야는 전부 중국, 동남아 업체들한테 내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매출이 나오는 몇몇 스타트업에만 정책자금이 쏠리고 민간에서 벤처투자를 외면하면서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라며 “국내 금융사들이 굳이 해외까지 나가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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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9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