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협업형 M&A…변화한 투자시장ㆍ자문사
입력 2018.10.04 07:00|수정 2018.10.05 09:49
    재계 26위가 톱클래스 기업 인수 달성
    삼성ㆍSK 등 이어 역대 4번째 규모 M&A

    은행들 적극 투자ㆍ자문사 선별 '경쟁'
    해외 신용평가사, 신용등급 하락 우려
    인수 후 모멘티브의 실적 유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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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반기 국내 핫 딜(Hot Deal)은 'ING생명'과 '미국 모멘티브' M&A로 꼽힌다.

      ING생명은 "언제 사느냐"를 제외하면 예측가능했던 거래로 분류된다. 반면 KCC의 모멘티브 인수는 시장을 놀래키며 오랜만에 등장한 협업성(?) 아웃바운드 거래였다.

      삼성, SK처럼 현금 곳간이 넘쳐나는 재계 최상위 그룹이 아닌 기업이 재무부담 우려를 감내하며 글로벌 톱 클래스 기업을 사들였다. 다수의 금융회사ㆍ투자기관들이 참여해 부담을 나눠진다. 2011년 휠라코리아의 아쿠쉬네트(타이틀리스트)이후 거의 첫 등장이다.

      관심사는 이를 가능하게 한 국내 자본시장 상황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수년만에 등장한 공격적 M&A…재계 26위의 역대 4위 거래

      "해외로 나가 새 먹거리를 찾으라"는 오랫동안 국내 기업들에게 할당된 숙제였다. 이에 일부 대기업은 과감하게 북미지역에 산재한 '세계1위' 회사들의 주인이 되려했다.

      두산이 명운을 걸고 산 밥캣은 소형건설장비 시장점유율 1위 업체였다. LS그룹의 슈페리어 에식스는 권선(모터에 들어가는 선)부문 세계 1위다. 미국 회사는 아니었지만 STX그룹의 아커야즈는 당시 세계 최대 크루즈선 회사였다.

    • 예외 없이 모두 2007~2008년에 거래가 이뤄졌다. 당시 조단위 해외 기업 쇼핑은 재계의 '유행'이었고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여기에 돈을 빌려주며 수익을 챙겼다. M&A 관련 포럼과 세미나는 '크로스보더 M&A 노하우'를 전수 받거나 혹은 거래를 따내려는 기업과 투자은행(IB)으로 문전 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리먼 브러더스 금융위기 이후 얘기가 달라졌다. 'M&A 전문가'로 칭송 받던 회사들은 이자부담에 허덕였다. 신용등급 강등에 계열사와 자산 매각까지 단행했다.'승자의 저주'가 재계의 새 화두로 떠올랐고 각종 M&A 세미나 주제는 '디레버리지'(Deleverage)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대형 아웃바운드 M&A는 '삼성ㆍSKㆍ롯데..'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로 바뀌었다. 이들은 풍부한 리소스와 투자경험ㆍ관련시장 이해도로 무장, 말레이시아 타이탄(1.5조원)ㆍ미국 하만(10조원)ㆍ일본 도시바 메모리(3.9조원)을 사들였다. 넘쳐나는 현금과 높은 신용등급 덕에 인수자금은 자체 마련했고 재무부담이 거론되는 일도 적었다. 당연히 국내 금융회사나 투자기관이 끼어들 여지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일한 예외가 2011년 휠라코리아의 글로벌 1위 '타이틀리스트' 인수였다. 이때 처음으로 기업-사모펀드(PEF)가 리스크를 공동부담하고 해외 1위 기업을 사들이는 포맷이 나왔다. 당시 전광우 이사장이 재직 중이던 국민연금은 아예 이 테마를 채용, 대기업에게 함께 해외에 나가자는 '코퍼레이트 파트너십' 펀드(PEF)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재계 최상위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국민연금이나 PEF 등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어 펀드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KCC의 모멘티브 인수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등장한 '세계 1위 기업 인수' 사례다. 재계 26위 기업이 삼성-하만, 두산-밥캣, SK-도시바에 이어 사실상 4번째 규모 M&A를 단행했다.

      ◆변신 꾀하는 금융회사ㆍ거래 따기 어려워진 자문사

      거래 성사되는데는 변신을 꾀하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노력도 큰 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대형 M&A가 한창일 당시에도 은행ㆍ투자기관들은 담보가 확실한 '빚'(Loan)을 제공하는데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에쿼티 투자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안정지향의 은행들이 더 높은 수익을 바라면서 리스크를 부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

      그러나 최근 투자시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은행들조차 이자수익에 기대지 않고 투자부분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인식이 마련됐다. 보수적이고 리스크 관리가 깐깐하기로 알려진 신한은행이 계열사 조직을 한데 모은 GIB모델을 활용, GTX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번 모멘티브 M&A에서도 마찬가지. 3조원대 거래에서 2조원 가량이 은행 빚으로 마련된다. 이를 검토하던 은행들 사이에서는 담보비율(LTV)과 지급보증이 충분한가 우려도 나왔지만 오히려 신한은행이 나서 지급보증 리스크를 감내하며 인수금융 제공을 확약했다. 지금의 신한은행이 아니었다면 하기 어려운 딜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M&A 자문사 선택방식이나 역할도 바뀌었다.

      2007~2008년 해외 기업 쇼핑이 한창이던 당시. 국내에선 10여개에 달하는 글로벌IB들이 맹활약했다. 인수자로 나선 기업이나 관련 거래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 여기에 국내기업들도 일단은 브랜드가 확실한 '글로벌 IB하우스'를 써야한다는 인식이 강했던지라 자문사들이 일감을 따기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M&A경험이 쌓이면서 자문사 선정 과정도 달라졌다. 심지어 삼성조차 글로벌 IB를 버리고 미국 현지 부티크를 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자문사들은 해당 거래에 대한 인연, 혹은 특출한 메리트가 없으면 딜을 따기 어려워졌다.

      이번 모멘티브의 경우. 매각 전 미국 현지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당시 대표주관사가 골드만삭스ㆍJP모건, 공동주관사가 UBSㆍCS였다. 이후 모멘티브가 매각으로 선회하자 골드만삭스가 매각주관사를 담당했고 JP모건은 혹시 모를 IPO를 대비해 남기로 했다.

      결국 모멘티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IB가 UBS와 CS 두 곳이 남았다. KCC컨소시엄은 이 중 UBS를 선택, 단독 인수자문사를 맡겼다. UBS는 거래 초창기부터 참여하여 KCC컨소를 도왔다. 거래가 성사되자 수수료 수익은 물론, 한국 대표를 새로 선임하고 조직을 추스린 효과를 봤다는 평가, 그리고 리그테이블 상위권 진출도 얻어냈다. 여기에 다른 자문사가 끼어들 자리는 별로 없었다.

      현재 모멘티브 M&A에서는 컨소시엄에 참여한 FI 자금모집과 펀드 등록 등의 과정이 남았다. SJL파트너스가 단독으로 6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펀드를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일반적인 콜옵션 & 드래그얼롱(Drag along) 형태의 프로젝트 펀드로 알려진다.

      거래가 발표된 이후. 무디스ㆍ스탠다드앤푸어스(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KCC의 향후 재무부담을 감안, 신용등급을 1등급 이상 떨어뜨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회사의 레버리지 비율이 높아지고 신용지표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KCC가 보유한 투자지분이 많아 이를 활용한 차입금 축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관건은 향후 모멘티브의 실적, 그리고 PMI(인수후 통합) 과정에 달려 있을 전망이다. 연간 4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모멘티브의 상각전 이익(EBITDA)이 꾸준히 유지되고 업황과 실적이 상승하면 이자비용과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는 사그라질 전망이다. 하지만 인수 이후 모멘티브의 이익이 떨어지기라도하면 부담은 다시 KCC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