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현대차 밀어내는 엘리엇, 이번엔 공감 못하는 투자자들
입력 2018.11.15 07:00|수정 2018.11.19 09:36
    현대차에 자사주 매입 등 13兆 주주환원책 요구
    "주가하락 손실 만회 목적", "기업가치제고 도움 안돼" 반응
    •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Elliot Management)가 또다시 현대자동차그룹을 압박하고 나섰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과도한 자본 규모를 축소하고, 주주들에게 환원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엘리엇의 이 같은 요구는 올해 초 현대차의 지배구조개편 작업 추진 이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강력한 주주환원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작 투자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현대차가 실적 부진에 따른 낮은 영업이익률이 '상수'가 돼버린 현재, 주주환원에 대한 대책보다 기업가치 제고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데 입을 모은다.

      엘리엇은 13일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자동차) 이사진에 서신을 보내 주주환원에 대한 전략적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①현대차 각 계열사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 추가 선임 ②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해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협업 ③현대차·모비스 주주들에게 초과자본금 환원 ④자사주 매입 방안 우선적 검토 ⑤비핵심 자산에 대한 매각 등 전략적 검토 실시 등이 주요 요구사항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가 8조~10조원, 모비스가 4조~6조원에 달하는 초과자본을 보유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현대차가 심각한 초과자본 상태에서, 과거 잉여현금흐름의 불투명한 운영으로 상당한 자본이 비영업용 자산에 묶여있고 주주환원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비해 꾸준히 미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금흐름에 대해 보고방식이 일관되지 못해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실제 현금흐름이 왜곡되거나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엘리엇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철회되고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대차그룹이 진전을 위한 어떤 실질적 소통도 하지 않았다"며 "그동안 가치 할인율과 지배구조 개편의 미흡함을 고려해 이 같은 요구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엇은 기존에도 현대차 이사진에 서신을 보내 현대차·모비스의 잉여금 규모를 줄이고, 자사주 소각을 비롯해 순이익의 최대 50%를 배당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엘리엇은 약 1조원 규모의 현대차 주요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며 현대차와 모비스의 합병 등 구체적인 지배구조개편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엘리엇의 주주제안에 투자자들은 반응했다. 하락세를 지속하던 현대차·기아차·모비스의 주가는 엘리엇의 주식 보유 발표 이후 상승했다.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이 동반 매수에 나섰다.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을 성사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주주환원 조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이후 현대차의 주가는 10년 전으로 회귀했다. 거듭되는 실적부진, 역대 최저치의 영업이익률이 지속된 점도 주요한 원인이 됐다. 중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DD)를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면 판매가 되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은 이미 사라졌고, 환율·유가·무역분쟁 등 대외변수, 이에 따른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당장 내년에 현재의 초우량 신용등급(AAA)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전통적인 내연기관에서 미래차로 옮겨가는 과도기에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이는 비단 현대차 계열사뿐 아니라 협력업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최근 들어 부도를 맞는 협력업체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엘리엇의 주주환원 요구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번 엘리엇의 요구가 현대차의 기업가치 제고보단, 거듭되는 주가하락에 큰 손실을 본 엘리엇이 주가부양을 위한 전략적 판단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 계열사 주가 하락에 따른 엘리엇의 손실액은 최대 4000억~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엘리엇의 요구는 현대차가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들이 많고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현대차가 현금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실적이 1~2분기만 더 지속되면 그때부턴 보유현금이 급속도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인 주주환원책을 시행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현대차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한 기관투자가 또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엘리엇이 이렇게 몰아 부치면 사실상 현대차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는 꼴인데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얻을게 없다"며 "최초 엘리엇이 주주제안을 했을 당시만해도 동조하는 투자자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이번 제안에 대해선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엘리엇의 주주제안이 발표된 이후 주가는 오히려 하락,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은 현재 진행형이다. 당초 올 연말 새로운 개편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됐으나 거듭하는 주가하락과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따른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초 미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를 완성차 업체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랩(Grab)을 비롯한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에 크고 작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새롭게 내놓을 지배구조 개편 방안은 사실상 마지막 시도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주주환원책 마련과 각 계열사 사업적 성장성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