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범 인프라코어 대표이사 FI 카운터 파트너로
"결정은 박용만 회장이, 책임은 박정원 회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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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를 둘러싼 두산그룹과 재무적투자자(FI)의 소송전이 내년부터 본격화된다.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고, 소송가액이 상당한 만큼 양측 모두 쉽게 물러서기 쉽지 않은 싸움이다.
만약 두산그룹이 패소할 경우, 최대 80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지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명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산그룹내에서는 최고 결정권자인 회장직은 이미 승계가 끝났고, 거래를 주도했던 핵심 인사들도 모두 자리를 옮겼다. 이러다보니 회사에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정작 책임질 인사는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DICC의 FI(IMM PE·하나금융투자 PE·미래에셋자산운용 PE)는 2011년 DICC 지분 20%를 인수했다. 3년 내 계획했던 기업공개(IPO)는 불발했고, 이후 진행된 공개매각도 실패했다. 2015년 FI들은 결국 두산그룹이 협조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에선 두산그룹 손을 들어줬으나, 올해 초 2심에서 고등법원이 FI 승소 판결을 내렸다. 두산그룹은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당시 고등법원이 인정한 두산과 FI의 매매계약 금액은 약 7093억원. 투자원금은 3800억원에 연간 15%의 이자가 가산됐다. 2심 판결 후에는 소송 촉진법상 이자율 15%가 지연 손해금으로 가산돼 이를 감안한 금액은 8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르면 내년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다. (* 참고기사 : 법원 DICC 2심 판결, "두산이 협조의무 있음을 알고서도 안했다")
다만 두산그룹이 패소한다 하더라도, 투자자 유치 또는 이후 협상 실패를 책임 질 인사는 사실상 없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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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당시 두산그룹에서 거래를 주도한 핵심 인사와 보고라인은▲이재경 전 ㈜두산 부회장 ▲이상훈 전㈜두산 관리부문 사장 ▲이상하 전 ㈜두산 관리부문 부사장 ▲박상현 전 ㈜두산 관리부문 상무 등이 꼽힌다.
당시 박용만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총괄업무를 담당했던 이재경 부회장은 두산음료·OB맥주·㈜두산 기획조정실을 거친 그룹의 대표적인 인사다. 2007년 ㈜두산 부회장으로 승진해 2018년 3월까지 재임하면서 그룹의 경영전반과 대표적인 M&A에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재경 부회장은 2011년 투자와 이후 진행까지 줄곧 보고라인의 최상단에 있었다. 그러나 정작 위기가 터진 지금 상황에서는 이번 현안에서 벗어나 있다.그런 이 부회장은 올 3월에 그룹 경영상 문제로 ㈜두산 대표이사직에서 돌연 사퇴하며 경영진에서 물러났고 무려 35억원의 퇴직금을 수령하며 회자가 됐다. 게다가 사퇴 2달도 안돼 이번에는 70을 앞둔 나이에 다시 두산건설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그룹 내외부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당시 관리부문 사장이었던 이상훈 사장도 주요 투자와 M&A 관련 최종 결재라인에 있었다. 지금은 ㈜두산 총괄기획 사장을 맡고 있다.
실무에서는 이상하 당시 ㈜두산 관리부문 부사장, 그리고 맥킨지 출신의 박상현 ㈜두산 관리부문 상무가 거래와 협상을 진두진행했다. 그러나 이상하 부사장은 2011년 11월부터 그룹 계열 투자기업인 네오플럭스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직책을 유지중이다. DICC 투자유치와 관련해 최앞단에서 실무를 처리한 박상현 전 관리부문 상무는 ㈜두산을 거쳐, 지금은 두산밥캣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결과적으로 그룹의 사활이 달린 사안이 벌어지고 있지만 당시 일을 처리했던 담당자ㆍ경영진은 멀찌감치 물러나있으면서 고위직으로 승진만 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2013년부터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를 맡으며 FI측 고소장에도 이름을 올렸던 이오규 전 대표는 지난 7월 그룹을 떠나 ㈜삼표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보니 정작 이번 소송은 올 3월 새로 취임한 고석범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가 도맡고 있다.
FI 유치 당시 두산 측이 제시한 거래조건과 양측의 합의조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키맨(Key-man)이 현재 소송에서 배제돼 있는 탓에 두산그룹 측이 불리한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거래조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을 현재 소송과 관련한 업무에선 공식적으로 빠져있는 것으로 안다"며 "FI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부터 모든 제반 사항을 다 알고 있는 인사들이기 때문에 그룹에서 고의적으로 소송과 관련한 업무에서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임 회장에서 벌어진 일을 새 회장이 떠맡는 모양새가 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당시의 거래는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現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재가(裁可)로 최종 결정이 된 사안이지만, 박용만 회장 또한 이미 지난 2016년 그룹 회장직을 조카인 박정원 회장에게 넘겨주며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새롭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박정원 회장이 앞선 회장의 과오(?)를 책임지는 것이 과연 맞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본인으로서는 기존 오너의 판단 미스를 고스란히 본인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처했기 때문.
이러다보니 8000억원 규모의 소송이 막바지까지 치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에서 현재 상황을 과연 회장에게 직언(直言)할 수 있는 인사가 과연 있었느냐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1심 판결 이후에도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던 두산그룹은 고등법원 판결 이후 "FI들이 법적·계약적 근거 없이 원금보장을 요구하다 여의치 않자 무리하게 투자금을 회수하려다 벌어진 소송"이라며 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공식 자료를 내기도 했다. (*관련기사 : 두산인프라코어, DICC 소송 IR레터 발송... "근거 없는 원금보장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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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두산그룹은 이번 소송에 패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금액에 대해서도 회계적인 반영을 하지 않은 상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분기보고서 등을 통해 "소송 사건의 청구금액은...7255억원이며 동 소송의 최종 결과 및 그 영향을 당분기말 현재 예측할 수 없다"라고 적시해놓았다. 소송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금액 예측치에 대해서는 "1심과 2심의 결과가 상반되어 소송 결과 예측 곤란으로 재무적 영향 판단 어렵다"고만 기술해놓았을 뿐이다. 당연히 재무제표상으로도 충당금 등을 통한 회계적인 반영이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행여라도 3심에서 패소 결과가 나올 경우. 주주들의 막대한 손실도 불가피해진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없지는 않다. 두산그룹에서 위안을 삼을만한 점은 DICC의 실적이 눈에 띄는 개선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중국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판매가 회복됐고, 올해는 FI의 투자시점인 2010~2011년의 실적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만약의 경우 두산그룹이 소송에서 패소한다 하더라도 DICC의 IPO가 추진되면 자금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판단도 깔려있다. 최근에 두산인프라코어는 보유하고 있는 두산밥캣 지분을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매각하며 여유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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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05일 10:1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