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석유화학 출신 주요 임원 배출 최다
'신격호 라인' 물갈이로 '황각규 라인' 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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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신동빈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첫 인사를 단행했다. ‘안정 대신 쇄신을 선택했다’는 게 그룹의 설명이다. 신격호 전 회장의 사람들이 물러났고, 호남석유화학 출신의 신동빈 회장 사람들이 꿰찼다는 평가, 동시에 황각규 부회장 라인이 그룹의 실세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동빈 회장이 복귀해 직접 경영을 챙기기 시작한 만큼 결정보단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사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롯데그룹 인사의 주안점은 ‘세대교체’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허수영 화학BU장과 이재혁 식품BU장, 소진세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새로운 화학BU장과 식품BU장에는 각각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와 이영호 롯데푸드 대표이사가 내정됐다.
롯데에서는 차세대 인재로의 세대교체와 질적 성장 중심의 성과주의 인사라고 자평한다. 다만 실제로 ‘인사 혁신’이 될지 아니면 신 회장과 황 부회장 라인들에게 ‘보상’을 주는 것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신동빈 회장 경영 복귀 후 첫 임원인사에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 출신들의 약진이 핵심이다. 호남석유화학은 신 회장이 1990년 상무로 취임하며 한국 롯데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고, 2004년에는 호남석유화학 공동 대표이사를 맡기도 해 화학사업에 대해 애착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룹 실세인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역시 호남석유화학 출신이다.
롯데지주와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통합물류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롯데첨단소재와 롯데컬처웍스 등에 9명의 호남석유화학(연구소 포함) 출신 인사들이 배치됐다. 1984년부터 1990년 사이에 호남석유화학으로 입사한 인물들로 신동빈 회장, 황각규 부회장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다.
이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사는 김교현 화학BU장과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내정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교연 화학BU장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에서, 임병연 대표는 롯데지주 가치경영실장에서 각각 보임됐다.
김교현 화학BU장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지 불과 2년 만에 롯데그룹 화학사업 총괄로 승격됐다. 롯데 내에서 ‘해외사업 전문가’로 꼽히고 있는 만큼, 해외사업 역량이 이번 인사에서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그룹 안팎의 해석이다. 김교현 화학BU장은 1984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2017년부터 롯데케미칼 대표를 맡았으며, 롯데케미칼의 말레이시아 법인(자회사)인 LC타이탄를 인수하고 지난해 말레이시아 증시에 상장을 주도한 인물이다. 파격적인 인사이긴 하지만 김교현 화학BU장의 업계 내 능력에 대해선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반면 임병연 대표가 롯데케미칼 수장으로 선임된 것에 대해선 ‘의외’라는 해석이 나온다. 석유화학업계가 최근 2~3년간의 초호황을 뒤로 하고 둔화 조짐을 보이는 등 업황 대응과 실적 방어가 중요한 상황에서, 호남석유화학을 떠난 지 14년 만에 현업으로 복귀하는 임병연 대표를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수장으로 내정하는 게 적합하냐는 지적이다.
임병연 대표는 1989년 호남석유화학으로 입사해 신규사업, 기획 업무를 담당하다 2009년 롯데그룹 정책본부 국제실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롯데미래전략센터장, 정책본부 비전전략실장을 거쳐 2017년부터는 롯데지주 가치경영실장을 맡아왔다. 황각규 부회장의 뒤를 밟은 셈이다.
또한 롯데에서 내세우는 ‘성과주의 인사’에도 임병연 대표가 해당되는지는 의문이라는 평가다. 그룹의 전반적인 전략을 담당하는 것과 현장에서 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임병연 대표의 선임은 입사 후 지금까지 유화사에 몸 담고 있는 김교현 화학BU장과는 결이 다른 인사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며 “임병연 대표의 경우 황각규 부회장과 서울대 화학공학과 선후배 사이로, 황각규 부회장이 2008년 롯데그룹 정책본부 국제실장으로 승진한 이듬해에 임병연 대표가 정책본부 국제실로 자리로 옮기는 등 두 사람의 교집합이 많은 편”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유통 부문에서는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가 롯데자이언츠 대표로 이동하는 것을 두고 잡음이 새어 나온다.
김종인 대표는 앞서 롯데그룹의 최연소 CEO 타이틀을 달았지만, 지속적인 마트 실적 부진에 자리를 옮겼다. 롯데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9.7% 감소한 6조5700억원이며, 영업손실은 2280억원을 기록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영업이 정지되면서 중국 진출 10년만에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새 롯데마트 대표는 문영표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가 맡게 됐다. 국내는 물론 동남아지역의 할인점 사업과 물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문 대표를 선임해 해외 사업에 힘을 실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예상치 못한 사드 보복으로 롯데마트가 철수하게 됐지만 이 모든 것을 김종인 대표 탓으로는 돌리기 어렵다”며 “중국에 집중하던 롯데그룹의 해외 사업 방향이 동남아로 옮겨지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낙마한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신동빈 회장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을 때는 안정적인 사업 경영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신동빈 회장이 출소하자마자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사업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간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려온 인사들을 대신해 신동빈 회장의 결정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심복’들이 주목을 받았다는 평가다. 그리고 해당 인사 대부분은 황각규 부회장과도 연이 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황각규 부회장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롯데그룹이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확장할 때 이를 진두지휘하거나 실무를 담당한 핵심 인사들이기 때문에 롯데그룹이 미래 사업 확장을 꾀하는 변곡점에선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며 “신동빈 회장의 친정 강화는 사실상 그룹 실세인 황각규 부회장 라인의 부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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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21일 10:4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