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쟁탈전 벌어진 2018 자본시장
입력 2018.12.27 07:00|수정 2018.12.28 09:45
    허리 부실한 IB업계, 인력 경쟁 심해
    내부 처우 '제자리'…외부 이적 잦아
    주로 PEF로 이동, 성공 사례도 많아
    법무·회계법인 간 인력 이동 늘 듯
    법률 지식+거래 경험 '시너지 효과'
    • 올해 자본시장에선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각축전이 치열했다. 시장 참가자들의 실적 부담은 커지는데 인력을 양성할 여유는 없고 공들여 키운 인력이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완성된 인력 영입을 꾀하지만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탓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종간 경계는 어느 때보다도 옅어졌고 자문사들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업무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한 업계에서 어느 정도 역량을 쌓은 인력은 다른 업계에서도 귀한 몸이 됐다.

      ◇허리 약해지는 IB…인력 보충 화두

      골드만삭스는 기존에 강했던 M&A 자문보다 IPO, 블록세일, 기업 지배구조개편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M&A 자문의 매력이 줄어든 면도 있지만 일을 맡길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평가도 나왔다. 권오상 IB부문 이사가 올해 베인캐피탈로 옮겼다.

      인력에 비해 벌이는 일이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크레디트스위스(CS)는 올해 JP모건에서 상무급 인력 두 명을 데려왔다. 메릴린치는 바클레이즈 출신 이수혁 이사, 노무라금융투자는 삼성증권 출신 한정훈 상무,  CS는 UBS와 KB증권을 거친 김세원 상무를 각각 영입한 바 있다.

      각 IB들의 관리직급 인력들은 수 년째 자리가 공고하다. 반대로 그 아래서 일을 수행할 ‘허리’는 부실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후진을 키우지 않았다는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매니징디렉터(MD)조차 아직도 잡무를 직접 챙겨야 한다며 푸념하는 처지다.

      소수 인력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외국계 IB의 특성상 핵심 인력의 유출은 치명적이다. 당장 실적은 채워야 하는데 손은 부족하다 보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업을 모르는 인력을 영입할 수는 없다 보니 다른 회사 인사에 눈을 돌리게 된다. IB 시장 안에서 인력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돌고 돌아 다시 IB 출신 인력을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거쳐 지난해까지 한화건설 기획실장으로 근무했던 이승호 상무는 올해 SC증권으로 직을 옮겼다. 이랜드그룹 자금 유치 자문 업무를 맡기도 했다.

      ◇IB 인력, 위상은 제자린데 외부 유혹은 증가

      IB 인력들이 업계 내부에서만 자리를 옮긴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처우는 몇 년이 지나도 썩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귀해진 IB 인력을 모시려는 외부 유혹은 늘고 있다.

      사실 IB 부문에서는 이미 기존 관리자급 인력들의 네트워크가 공고하기 때문에 아래서 치고 올라갈 여지가 많지 않다. 그나마 MD에 가까운 인력들은 승진을 바라보며 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근 IB 인력들이 빈번히 자리를 옮기는 곳은 사모펀드(PEF)였다. 직접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고 영입 제안에 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래 성사를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하는 IB와 남의 돈을 살피고 살펴 투자해야 하는 PEF는 상성이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올해 임석정 전 JP모건 한국대표가 설립한 SJL파트너스는 모멘티브, 셀트리온홀딩스 등 투자에 성공했다. JP모건 IB본부장을 거친 서재균 대표와 모건스탠리 홍콩법인에서 근무했던 구본석 대표는 지난해 PEF 운용사 아든파트너스를 차렸다. 올해 영국 2위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회사를 인수하는 등 수천억원의 투자 실적을 쌓았다.

      우리프라이빗에쿼티자산운용은 노무라금융투자 출신 김경우 대표를 영입했다. 회사는 올해 블라인드펀드 운용사로 잇따라 선정됐다. 경쟁사에선 채권자본시장(DCM) 전문가인 김경우 대표의 이직으로 노무라의 영업력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김철환 전 UBS 상무는 CVC캐피탈파트너스로 이적했다. 직급보다는 글로벌 운용사의 ‘간판’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시장을 꾸준히 살피고 있는 글로벌 운용사 블랙스톤은 최근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JP모건 출신 인력 2명을 영입했다. 모건스탠리 홍콩법인에 있던 김남선 상무는 맥쿼리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들의 IB 인력 선호도 여전했다. 내부 인력은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그 외의 아이디어나 해외 네트워크 면에선 IB 인력들을 앞서기 어렵다. 시장 지위를 끌어올리거나 새로운 전략을 원하는 기업들이 주요 수요처다.

      최태원 회장이 ‘글로벌 경영 강화’를 천명한 SK그룹은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를 수펙스추구위원회 글로벌사업개발 담당 부사장에 앉혔다. 투자금융업계 이력에 관심이 모였다. SKC는 조민재 전 HSBC증권 서울 부대표를 데려왔다. CJ㈜는 강경석 전 메릴린치 상무를 재경실 임원으로 영입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꾸준히 글로벌 영토 확장을 독려하고 있다.

      한 IB 관계자는 “IB 한국 대표를 맡아도 성과급까지 포함해 10억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핵심 인력들조차 외부에서 좋은 조건이 오면 이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펌·회계법인도 호시탐탐 인력 보강 꾀해

      인력 영입은 IB만의 고민이 아니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등 자문사들도 경쟁력 강화에 고심하고 있다. 체면상 드러내놓고 움직이지는 않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쟁사 인력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분위기다.

      태평양은 최근 김앤장에서 컴플라이언스(규제준수) 전문 변호사들을 영입했다. 국내 기업의 컴플라이언스를 담당하던 박준기 변호사 해외 기업의 컴플라이언스를 맡던 최원규 외국변호사 등 4명이 자리를 옮겼다.

      컴플라이언스는 법무법인들이 핵심 먹거리로 꼽는 영역이다. 이 부문 최강자인 김앤장도 못내 아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로펌들도 내년 ‘중량급’ 인사 영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실력을 쌓은 변호사는 IB 인력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 법률지식에 수많은 거래 경험까지 얹어진 변호사는 희소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법무법인이 잡기 어려운 금액을 제시 받고 떠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바디프랜드는 올해 정진환 광장 제약·헬스케어 부문 변호사, 박태영 김앤장 변호사를 잇따라 영입했다. VIG파트너스가 보유한 바디프랜드는 IPO 및 해외 사업 확장으로 중요한 시기다. 광장은 변영식 전 아스트라제네카 상무를 영입했다. 김학훈 광장 변호사는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과 함께 일하게 됐고, 세종에서 공정거래 분야를 담당했던 이재환 변호사는 위메프로 자리를 옮겼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어려움을 겪었던 딜로이트안진은 대규모 소송 부담까지 겹치며 뒤숭숭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인력들이 대거 유출됐고 다른 경쟁사들이 상당부분 인력을 흡수했다. 딜로이트안진이 강했던 구조조정, 세무, PEF 부문의 인력 영입이 분주했다.

      딜로이트안진 세무팀 이적이 대표적이다. 국내 M&A 및 기업 세무자문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탁정수 전무팀 인력이 삼일PwC로 이적했다. 이들은 세무에 민감한 글로벌 PEF들이 특히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PwC는 다소 아쉬웠던 세무자문 분야를 강화하고 일거에 새 고객도 확보하게 됐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간 인력 영입 움직임은 잦아질 전망이다. 모두 고유의 업무만 해서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서는 글로벌 회계법인이 법률자문 시장까지 아우르고 있다면 국내서는 법무법인에 회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회계사는 “법무법인에 회계사가 있으면 M&A 구조를 짜거나 가치를 산정하고 최근 일감이 늘어난 감리 업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아직은 과도기 수준이지만 앞으로 법무법인의 회계사 영입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