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시설투자 등 자금소요 증가
신사업 확장으로 외부 차입 확대
주주친화정책 강화 부담 등이 원인
산업환경 변화로 눈높아진 투자자
재무부담 장기전에 버틸 체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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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우량기업들의 신용등급 저하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ㆍSK텔레콤ㆍLG화학ㆍCJ제일제당 등 국내 산업별 1위 사업자들이다. ▲사업부진과 수익성 저하 ▲신사업 확장에 따른 외부차입 증가 ▲주주환원 정책 강화로 인한 부담 증가 등 표면적 이유는 제각각이다.
근원적인 이유를 들여다보면 궤를 같이 한다. 산업 트렌드가 급격히 바뀌고 있고, 투자자들은 눈높이가 높아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 혹은 과거에 일찌감치 준비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발생한 비용들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런 추세는 불가피한 만큼, 장기전에 대비해 버텨낼 체력이 요구되고 있다.
연초 채권시장 주인공은 단연 LG화학이었다. 지난해 국내 채권시장에서 1조원어치 공모회사채를 발행한 LG화학이 올해 다시 한 번 같은 규모로 채권을 발행한다. 다음달에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10억~15억달러어치 글로벌본드를 발행할 계획이다. 상반기에만 최대 2조7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LG화학은 올해 6조2000억원의 시설투자를 예고했고 몇몇 건의 인수합병(M&A)도 검토 중이다. 조달 자금은 여기에 투입된다.
연결기준 2016년말 2조8900억원이었던 LG화학의 차입금은 2018년말 2배 가까이 늘어난 5조3200억원이 됐다. 향후 투자 규모가 영업현금흐름을 웃도는 수준으로 차입금 부담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온다. 그리고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설비투자로 인해 재무부담이 확대될 것이라며 LG화학에 '부정적' 등급 전망을 부여했다.
2030년 3개 이상 사업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월드베스트 2030’ 목표를 세운 CJ그룹은 확장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선봉장을 맡았다. 올해 쉬완스 인수에 8000억원, 충북 진천 식품생산기지에 3000억여원, 베트남 통합생산기지에 1100억여원의 비용이 집행될 예정이다. 미국 최대 식품첨가물 기업 프리노바 인수도 검토 중이다. 인수자금은 1조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CJ제일제당의 지난해말 연결기준 차입금은 7조888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170%에 육박한다. 프리노바를 인수할 경우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제시한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 수준을 넘게 된다. 희소성 있는 미국 대형 매물임은 틀림없지만 연속으로 이어지는 대형 M&A는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비주력 사업부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긴 하지만 프리노바 인수를 강행할 경우 신용도 압박이 현실화할 수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LG화학과 CJ제일제당 모두 신용도가 우량하고 특히 재무구조가 우수했지만 최근 몇 년간 확장 모드가 지속되면서 총차입금이나 잉여현금흐름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며 “당장 신용도를 조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기존 사업이 부진하거나 신사업 효과가 크지 못할 경우 본격적인 신용도 압박이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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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S&P로부터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았다. 요지는 수익성 저하와 차입금 증가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 속에 5G 관련 마케팅 비용은 늘어 수익성에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1번가 적자 지속도 문제다. 1~2년 내 이커머스 사업부의 이익이 크게 개선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와중에 ADT캡스 인수로 회사가 보유한 차입금 1조8000억원이 연결차입금으로 인식됐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해도 향후 11조5000억원의 차입금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무디스는 이마트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조정 검토에 들어갔다. 기존점 매출 성장률이 부진한 상황에서 비용 압박으로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온라인 유통의 경쟁 심화로 영업환경이 비우호적이라 단기간에 의미 있는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재무 레버리지 비율은 신용등급 대비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굿푸드 인수와 높은 수준의 설비투자로 연결기준 총차입금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쇼핑몰 자회사의 7000억원 규모의 증자도 차입금 성격이 있다면 차입금이 더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내수 기반이고 주력 사업의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보니 새로운 사업, 새로운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기본적인 현금흐름을 보고 투자한 로컬 기업이 신사업 투자를 한다는 것이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진 않는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등급하락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해말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에 이어 올해 NICE신용평가까지 현대자동차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부정적’ 등급 전망을 제시하면서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완성차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저하되는 추세에서 무역환경 악화, 판매부진, 품질비용 발생 등으로 영업수익성이 경쟁사 평균보다 낮아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NICE신용평가는 “비우호적으로 변화된 산업환경을 감안할 때 중단기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P는 판매 부진, 수익성 악화 문제뿐만 아니라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투자 확대도 신용도 저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주주환원 정책은 S&P의 예상을 넘는 수준으로 책정됐고, 현금보유고를 감소하면서까지 확대된 투자가 실제 영업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지는 불확실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그룹이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시대 본격 개막을 선언했다. 가뜩이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로부터 배당, 사외이사 등 여러 요구를 받고 있다. 주주총회를 앞둔 시점에서 국내외 신용등급 하향 압력은 정 부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외 신용도 하향 압박을 받는 기업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이들 모두 각 분야에서 톱티어(Top Tier) 기업들이다. 그러면서 산업과 시장환경 변화에 대응 중이거나 대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기존의 주력사업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강구 중이다. 규모의 경제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투자를 더 늘리거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사업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등 산업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기존에 쌓아놨던 현금을 쓰거나 비주력자산을 팔기 시작했다. 금고가 바닥을 보이자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수혈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보니 재무구조가 과거에 비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접어들었다.
주주와 투자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진 점이 더욱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다. 해외 투자자들은 미래성장성이 꺾이기 시작한 국내 기업들을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국내 연기금도 우군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워졌다. 주주행동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의 주주친화정책의 비용 증가는 당연한 일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안팎에서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신용도 추세는 우상향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분간 유무형의 압박 증가로 신용등급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다만 각 기업들간의 격차는 조금씩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 투자 성과가 제대로 나는지 여부에 달렸다. '변화에 대응한 조치가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싸움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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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