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논리 부족하고 행여 거래 무산시 해법도 불투명
아시아나항공, 오너 일가 축출에 무게 둔 듯
産銀, 대우조선 플랜B·아시아나 M&A 명분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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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은 2017년 9월 이동걸 회장 취임 이후 굵직한 산업ㆍ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왔다. 과거 10년간 산은이 풀지못한 금호타이어ㆍ대우조선해양ㆍ아시아나항공 등 '난제'들이 전부 이동걸 회장 취임 1년 반만에 모두 결론을 냈다.
게다가 3년 임기 중 남은 1년반 동안 대우건설은 물론, KDB생명까지 해결할 기세다. 이동걸 회장 역시 공공연하게 이런 포부와 계획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ㆍ이동걸 회장 모두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일절 배제하고 있다. 오히려 산업은행의 '역할'을 '구조조정'과는 철저히 분리하고, 선긋기하려는 모양새다. 최근 이사회를 열어 'KDB인베스트먼트'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출자회사 관리ㆍ구조조정 업무를 여기에 맡기겠다고 한 것도 동일선상이다. 오히려 이동걸 회장이 제시하는 산업은행의 정체성은 벤처ㆍ중소중견기업 육성과 지원을 중심으로 한 '혁신성장'에 맞춰져 있다. 이번 정부의 목표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 재계와 금융시장에서는 지난 1년 반 산은이 해온 작업을 '문재인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정부에서는 출범 이후 2년간 조선ㆍ해운ㆍ철강ㆍ건설 등에서의 산업재편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계기업 퇴출 논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히려 '일자리 보호', '중견기업 육성'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나마 산은의 대우조선해양 등 출자회사 매각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대기업 구조조정의 대표사례였다. 산업은행의 의도와는 거꾸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비전문가" "조선업 2강 체제로 산업재편 추진 필요"…이율배반적인 정책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산은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1월말 대우조선 민영화 절차를 발표하면서 "조선업 비전문가인 산업은행의 관리체제 하에서는 대우조선의 추가적 경영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관리능력 부족을 스스로 시인하면서 이를 통해 빨리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실 산은이 이처럼 전문성ㆍ판단능력 미비를 자인한 경우는 드물다.
산은은 '산업의 개발ㆍ육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지역개발, 금융시장 안정 및 그 밖에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ㆍ관리'(한국산업은행법 제1장제1조)에 따라 정책적 산업육성을 위해 설립된 곳이다. 그래서 수장에 대한 명칭이 한국은행처럼 '총재'이기도 했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간은행화'를 추진하고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검토했다가 다시 거꾸로 '정책금융공사'를 떼내고 붙이는 등 정체성 혼란을 겪었지만 본원적인 설립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은 잘나가는 하이닉스에서부터 대우조선ㆍ금호아시아나그룹ㆍ동부그룹 등 숱한 한계기업들이 산은의 관리를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현재 산은은 이런 정체성을 슬슬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거꾸로 처리과정에서는 다시 '산업전문가' , '정책입안자'의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 매각 목적으로 "조선산업 재편을 통해 Big 3 간 중복 투자 등에 따른 비효율 제거가 수반돼야 한다"를 내세웠다. 이른바 일반적인 자회사 처리가 아닌, 정부 차원에서 신경쓸법한 정책적 목표다. 지분매각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번 계약은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고용을 안정시키고, 조선업을 더욱 발전시키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공식 선언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런 국가정책 수준의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 산은이 들인 수고와 노력의 정도다.
대우조선 처리 문제는 분식회계에서 과당경쟁ㆍ지역경제 기반붕괴와 노조문제까지 얽혀 있었다. 과거 10년간 난제였던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동걸 회장의 산은이 이 문제 해결에 들인 시간이 단 6개월 가량에 그친다. 심지어 한국GM, 금호타이어 등 당장이 급한 구조조정이 겹쳐 진행되고 있어 온 여력을 쏟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말 세계 1위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가 대우조선 매각의 진짜 목표였다면? 국토해양부ㆍ산업자원부 등 정부와 긴밀한 협의ㆍ조선업 전문가와의 토론과 의견 청취ㆍ조선3사와의 전반적인 협의등이 다년간 뒷받침돼야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일절 드러나지 않았다. 이웃 일본만 해도 한계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는데 있어 유관부처ㆍ민간조사기구ㆍ채권은행 ㆍ연구원ㆍ해당 기업들이 함께 모이는 의사결정 기구를 마련하고 여기에 전권을 부임해 다년간 검토를 거친다. 하지만 국내에선 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면서 그 흔한 '협의기구' 하나 없이 국책은행 관련부서가 현대중공업 의견을 듣고 발표한 것이 전부다.
이번 거래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없다.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히는 '해외경쟁당국 승인' 문제로 행여 거래가 불발로 그치면 조선업,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최악의 결과를 맞이해야 한다. 이러다보니 무산 시 배임 논란에 휩싸일 것을 우려한 대우조선해양 임원들은 벌써부터 실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는 후문도 돌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지 인베스트조선은 산업은행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는 M&A 시장에선 흔치 않게 인수후보자를 사전에 정했지만 현 시점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심사 통과 가능성은 “50%는 넘는다고 봤다”고 했습니다. 결합심사 기간이 장기화할 수도, 또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현대중공업은 잃은 것이 없지만 그러는 사이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가치는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감안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만약 결합심사가 통과하지 못할 경우 플랜B는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산업은행은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아시아나항공, '빚' 많으니 새 주인 찾아서 매각해야 한다면서 돈 먼저 빌려준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처리 문제에서 보인 모습은 또 달랐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정책적 목표를 내세우면서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했다면, 아시아나에서는 항공산업 전반에 대한 재편이 아닌, 특정기업 오너에 주목했다.
사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명분' 자체부터 논란이 많았다. 대우조선이야 어찌됐든 1대 주주인터라 자회사(출자회사) 매각이라는 명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나 사태는 회계부실과 신용등급 강등 위기로 인해 발생된 시장 문제였다. 당장 채무만기로 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할 상황은 아니었다. 회계감사 문제로만 따지면 대우조선 분식회계도 제대로 감시못한 산은이 아시아나 회계부실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것 자체에 정당성이 부족했다. 산은이 빌려준 몇천억원의 대출은 아시아나 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금융시장에서, 또 굳이 나선다면 금융위원회가 나설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산업은행과 이동걸 회장 전면에 나섰다. 이런 상황이니 산업은행이 아무리 '구조조정'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여도 시장에서는 "이번 정부에서 대기업ㆍ산업 구조조정은 산업은행이 맡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사태를 처리하는 '제1원칙'이 뚜렷하지 않다보니 처리방향이 애매모호해졌다는 점이다.
기존 대주주 경영부실로 시행되는 구조조정의 경우. 대주주의 금전적 책임을 묻고 이후에서야 자금지원이 이뤄진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반대다. 기존 대주주의 경영방식을 공개적으로 비난해왔지만 정작 그의 주식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준다. 게다가 "회사가 빚이 많으니 매각을 해서 돈 많은 새주인을 찾아주고, 새 주인이 지원하도록 하자"고 하면서 산은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선지원'했다.
이럴거면 굳이 금호그룹의 '최초제안'을 왜 거부했느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구조조정의 '정석'으로만 따지면 산은은 과거 금호그룹의 요청을 지렛대로 삼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로 유동성 지원해 줄 테니 1~2년 영업정상화 한번 해 봐라. 대신 추가 차입은 일정정도 제한하고 영업이익을 일정 수준 못 거둘 경우 우리가 출자전환해 대주주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방식을 제안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추후 대주주 권한을 행사에 매각에 성공하면서 누릴 프리미엄은 대부분 채권단 몫으로 둘 수 있다. 과거 대부분의 채권단 주도 거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됐고 그 결과 하이닉스처럼 채권단 자금 회수율도 높이고 새 주인을 성공적으로 찾아준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방식이라면 박삼구 회장을 당장 몰아내지는 못한다.
이런 평가에 대한 산업은행의 설명을 요구했다. 역시 인베스트조선은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는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서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항공업 구조조정보다는 대주주 교체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시아나항공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매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민간 기업의 대주주를 교체하려고 한다”, “민간 기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들이 나옵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서 산업은행의 명분과 목표는 무엇입니까.>라고 산은에 질의했다.
하지만 산은은 이 질의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았다.
대우조선ㆍ아시아나 모두 이번 정부 들어 이뤄지는 몇 안되는 산업재편에 해당된다. 하지만 적용되는 원칙이나 방향성,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평가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하겠다면서 정작 이를 위한 논의도 충분하지 않았고 대비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굳이 출자회사도 아닌 기업 오너를 압박해 매각을 단행하도록 했지만 그것이 산은이 할 일이었는지, 또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도 뚜렷하지도 않다.
표면상 얻은 것은? "과거 정부에서, 혹은 과거 회장 임기 당시에는 해내지 못한 문제들을 이번 정부에서, 이동걸 회장 임기에 단칼에 해결했다"라는 평가 정도다.
지난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실패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조선ㆍ항공업 뿐만 아니라 주요 산업 전반에 대한 확고한 정책적 목표가 필수다. 하지만 산업은행도, 혹은 산업은행을 통해 일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정부도 이를 명쾌히 밝히지 않았다. 드러난 것은 "임기 내에 다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다급함' 혹은 '성급함'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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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5월 07일 18:0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