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 참여해 대우조선 자금 지원 가능성
기업결합승인 부결시 현대重 승계만 도운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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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이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방안에 찬성하기로 했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찬성하고, 새로 생길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사) 유상증자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향후 국민연금 자금을 대우조선에 투입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관련기사 : 현대重 주총, '분할 찬성=유증·대우조선 인수 찬성'...정관 변경이 핵심>
그간 울산 지자체와 정치권, 노동조합은 국민연금이 이번 분할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공공성 훼손과 경제민주주의 역행, 국가균형발전 원칙 위배 및 지역경제 악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대의’를 선택했다.
국민연금은 향후 결과에 따라 현대중공업 오너일가 승계와 재벌 지배구조 개편만 도운 셈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오는 31일 열릴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 안건으로 오른 물적분할 방안이 통과되면 현대중공업은 '오너일가→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지배구조를 보유하게 된다. 투자자들을 설득하고자 현대중공업이 내세운 논리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경영효율성 및 투명성을 극대화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는 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부터 “현대중공업 자산 50%인 12조200억원이 존속법인 한국조선해양으로 넘어가고, 울산에 남게 되는 분할신설법인 현대중공업이 부채의 95%인 7조500억원을 떠안은 비상장 법인으로 전락하는 점을 봤을 때, (물적 분할은) 고용불안뿐 아니라 기업안정성도 보장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울산 정치권과 지자체 등은 현대중공업의 본사 이전, 세수 감소, 자본과 인력 유출 등을 우려하며 법인분할에 반대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오너 일가 경영권 세습 ▲재벌 사익 편취 ▲대우조선 인수 원활화 ▲현대중공업 자산 축소에 따른 구조조정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지난 27일 한마음회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현대자동차 노조도 연대투쟁 의사를 밝혔다. 현대중공업과 오너 일가, 그리고 대우조선을 매각하는 산업은행만 찬성인 모습이었다.
결정은 주주들 몫으로 남았다. 회사 분할은 주총 특별결의 사안이다. 현재 특수관계인·재단을 포함한 현대중공업 지분율은 34.75%다. 주총 참석율 85%를 가정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적어도 21.9%의 주주를 추가로 더 설득해야 분할에 성공할 수 있다.
범현대가인 KCC가 6.76% 지분을 보유한 3대 주주이고 분할에 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감안하면, 결국 '캐스팅보트'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차치하고, 현대중공업 2대 주주(9.35%)인 국민연금의 반대가 있어야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국민연금 결정에 따를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이번 분할은 앞으로 대우조선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과도 연결돼 있다. 향후 한국조선해양은 1조2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는 대우조선에 지원해 줄 자금 마련을 위한 수단이다. 필요한 자금은 주주배정 증자로 진행되도록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계약했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에 투입될 자금 부담은 ▲현대중공업 4000억원 ▲국민연금 1175억원 ▲KCC 850억원 ▲나머지 기관과 개인주주가 3600억원을 부담하도록 구조가 짜여 있다. 7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방만 경영이었던 대우조선에 국민연금이 '재투자' 한다는 의미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이 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런 우려를 모두 뒤로하고 현대중공업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전문위)를 통해 ‘분할계획서 승인’과 ‘이사 선임’에 모두 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민감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국민연금에 '명분'과 '도의적 책임'을 떠넘겨 온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국민연금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주주총회 안건은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과당경쟁 상태인 조선업 구조조정 명목으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번 주총에서 분할안이 통과된 이후부터 국민연금에 매겨질 '평가'다.
국민연금 선택은 어디까지나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 전제는 각국의 기업결합승인에 달렸는데 특정지역에서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현물출자와 이어질 유상증자는 승인 이후 문제다. 심지어 심사가 얼마나 걸릴지도 미지수다.
이 과정이 실패로 돌아가도 현대중공업은 잃을 것이 전혀 없다. 어쨌든 조선 관련 법인을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합법적으로 세워진다. 경영 승계의 밑그림도 그릴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정기선 대표가 의욕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를 한국조선해양에 편입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 위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조선 계열사에 대한 정기선 대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대우조선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 과정 자체를 오너일가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관련기사 :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 승계에 이용될 대우조선 M&A>
국민연금은 여기에 '찬성'을 내려줬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안정성과 수익성이 양호한 자산에 연기금을 운용하되 공공성을 함께 고려해 운용한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공공성'을 위해 찬성했는데 대우조선 M&A가 실패하면, 국민연금은 "현대중공업 오너 일가 승계만 도왔다"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이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따져물어왔는데 오히려 국민연금이 오너를 도와준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예측 못한 결과'라고 변명하기도 어렵다. 이번 매각의 위험성은 수차례 경고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의 근간이 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수년이 지난 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엄청난 후폭풍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외부위원회인 '수탁자전문위원회'를 내세운터라 당시와는 상황이 다른 편이지만 부담감은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수탁자전문위도 일부 의견이지만 "분할신설회사(현대중공업)에 대한 기존 주주의 통제 약화가 우려된다"며 "분할신설회사가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애초에 국민연금이 '향후 있을 고배당을 위해 현대중공업 분할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앞장 서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고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평가다. 자가당착에 빠진 국민연금의 결정은 결국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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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5월 29일 16:0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