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만에 '두 배' 가격 올려…밸류에이션 논란 지속
본부 내 '헤게모니' 거론…아시아 총괄 따낸 에드 후앙
5000억 프리미엄은 '트로피용?'…엑싯 우려도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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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운용자산(AUM)만 500조원에 달해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중 하나로 꼽히는 블랙스톤(Blackstone)이 지오영 인수로 한국 시장에 첫 조(兆)단위 투자를 단행했다. 이 소식은 PEF업계에 여러모로 놀라움을 안겼다. 글로벌 큰 손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따른 긴장감, 좋은 매물을 놓쳤다는 아쉬움과는 결이 다른 이유였다. 궁금증은 “저 회사를 왜 저 금액을 주고 투자할까” 였다.
10여년전 골드만삭스PIA가 지오영에 지분 45%를 사겠다면서 투자한 돈이 400억원이다. 이어 2013년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1500억원(지분 57.6%)을 투자해 일부 지분을 사왔다. 다만 실제로는 같은 인물들이 같은 회사에 약 5년 반복적으로 투자한 사례다. 골드만삭스PIA의 안상균 대표ㆍ위세욱 전무 등이 새로 펀딩을 받아 차린 회사가 지금의 앵커에쿼티다. 그리고 다시 6년이 지나면서 이 회사 기업가치는 무려 1조1000억원으로 뛰어 올랐다.
지난해 기준 지오영의 상각전영업이익은 700억원대다. 따라서 블랙스톤이 이번에 지오영을 인수한 EBITDA(상각전영업이익) 배수는 15배가 적용됐다. 본입찰 당시 글로벌 사모펀드들 사이에선 10~11배라는 공감대가 있었던 터라 밸류에이션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블랙스톤은 불과 반년 전 절반 정도 가격이면 회사를 인수할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말까지 앵커측과 물밑에서 단독 협상을 벌여 지오영 지분 매입을 준비해왔다. 당시 블랙스톤은 5000억원을, 앵커 측은 6500억~7000억원 수준을 원해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결렬 이후 올 초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주관사로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선임해 공개매각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결국 '잭팟'을 거뒀다.
협상이 지연되고 반복되는 6개월간 기업가치가 거의 2배 가까이 뛰었던 셈. 그러나 반년만에 의약품 도매 거래가 대폭 늘어날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PE종사자 사이에선 “블랙스톤이 뭐가 이렇게 조급했을까”, “2조에 전략적투자자(SI)에 팔려고 저러나” 등등의 의문들이 나온다.
좀처럼 재무제표로는 해석이 안되다보니 결국 관심은 블랙스톤의 '속사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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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블랙스톤의 한국 투자를 이끄는 인물로 국유진(Eugene Cook, 34) 씨가 거론된다. 국 씨는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JP모간, 칼라일, KKR 등을 두루 거쳤다. 이후 미국 블랙스톤 본사, 홍콩 지점 등에서 근무해왔다. 대상그룹의 차녀인 임상민 대상 전무가 그의 배우자다. 한화그룹 대주주일가 삼형제와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다.
하지만 블랙스톤 내에선 상무(Principle) 직급인 국 씨에게 국내 투자를 총괄하고 집행할 권한이 있었다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오히려 블랙스톤과 접촉하거나 투자를 논의했던 관계자들은 한국 투자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은 에드 후앙(Ed huang, 43)에게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회사도 공식적으로 중국과 한국 PE부문 대표(Head of Private Equity for Greater China and Korea for Blackstone)로 에드 후앙을 소개하고 있다.
에드 후앙은 모건스탠리PE 아시아에서 매니징디렉터(MD)를 지내다 지난 2012년 블랙스톤으로 영입됐다. 모건PE 내에서 중국투자를 맡아 성과를 내왔고, 사실상 중국 내 투자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블랙스톤에 합류해선 중국은 물론 한국 투자 책임자까지 겸임했다. 예일대 졸업 이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을 거쳤다.
당시 아시아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보이겠다는 블랙스톤의 포부 아래 합류했지만 그간 한국에서의 투자 성과는 2015년 핸드백업체 시몬느 투자(3000억원) 정도에 그쳤다. 2016년 대성산업가스 인수도 검토했지만 숏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 2017년 베인캐피탈에 앞서 휴젤 인수도 물밑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했지만, '윤리적' 이유를 들어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고 전해진다. 중국인 헤드가 중국과 한국 투자를 겸임하는 구조 아래서 국내 중견·중소 기업의 경영 행태를 '밑바닥'부터 겪어온 타 글로벌 PEF와 딜 소싱 경쟁이 될 수 있겠냐는 의문도 나왔다.
여기에 또 블랙스톤 아시아 조직 내 고질적인 '섭정' 문제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에드 후앙의 합류 이전 2011년부터 홍콩에서 블랙스톤 동아시아 업무를 총괄해온 얀 닐슨(Jan Nielsen)은 일본과 한국을 자신의 관할 아래 두고 있었다. 얀 닐슨은 2016년 COO로 승진해 사실상 아시아 지역 내 모든 조직을 총괄하는 책임자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글로벌PEF 종사자 사이에선 업력이 화려한 두 사람 사이의 공존이 가능할지를 두고 여러 평가들이 오갔다.
얀 닐슨이 아시아를 총괄하던 시기 블랙스톤의 한국 투자를 경험한 인사 사이에선 독특한 특징이 거론되기도 했다. 거래 과정에서 자문사 인력까지 백인을 선호한 탓에, 글로벌 네트워킹을 수소문해 백인 인사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거래에 적극적이지도 않은 데다 의사결정은 꼬이다보니 펀드 사이즈와 걸맞지 않게 자문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고객으로도 꼽혀왔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된 건 1년 전. 지난해 6월 얀 닐슨이 블랙스톤을 떠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에드 후앙이 아시아 시장 투자를 담당하는 총 책임자에 올랐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초 처음으로 아시아 시장에 투자할 2조7000억원(23억달러) 규모 바이아웃 펀드를 클로징해 실탄도 채워줬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서도 성과를 보여야 할 시기 아니냐는 평가들이 나온 이유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 혹은 거부 반열에 오른 창업자 조선혜 회장 등이 이런 블랙스톤의 속사정을 고려해 공개 매각으로 선회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는다. 업계에선 블랙스톤이 추후 어떤 회수 전략을 짤 지, 아니면 5000억원 쯤은 한국 데뷔를 위해 선뜻 지불할만한 프리미엄으로 결정했는지 여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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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5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