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로 참여한 후 항공기 구매 등에 관여…'델타와 이이들'
조원태 회장 '고민' 해결해줬지만 추후 영량력 행사 가능성
국토부 "영향력 행사하더라도 지분율 낮으면 문제 없다"
-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내막을 두고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항공사가 아닌 지주사의 지분을 사들인 만큼 델타항공이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따라 KCGI와 벌였던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국면으로 평가받고, 한진칼 주가도 연일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세계1위 규모 델타항공이 '순수한' 조원태 회장 측 백기사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그간 델타항공이 주요 국가 항공사 지분을 취득하면서 항공기 구매 등 여러 부문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이력이 많아서다. 이에 따라 델타항공의 등장이 대한항공에 마냥 좋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향후 지분을 매개로 대한항공 경영에 깊이 관여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투자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그간 델타항공이 다른 항공사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합작사(JV)를 만들면서 각 항공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일례로 델타항공은 지난 2013년 4000억원을 들여 미국 버진 아틀란틱항공 지분 49%를, 2015년에는 5100억원을 들여 중국동방항공 지분 3.5%를 매입했다. 이어 2017년에는 에어프랑스 지분 10%를 4900억원을 매입하는 동시에 중국동방항공ㆍ버진 아틀란틱과 총 1조3000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 '빅딜'도 단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분을 다양하게 확보한 델타항공은 에어프랑스와 JV를 통해 미국-유럽간 총 운황횟수의 21%까지 점유율을 늘렸다.
-
동시에 각 항공사에 대한 지배력도 높아졌다.
델타항공은 중국동방항공에 지분을 투자한 이듬해인 2016년 동방항공에 20대의 A350과 15대의 787 기종 구매를 권고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버진 아틀란틱이 최근 20대의 A330 네오 항공기를 이용할 계획을 발표한 것도 델타항공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어프랑스에 델타항공 관계자가 이사진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CEO는 지난 3월 “다른 항공사 투자를 통해 실제로 이사회 내부에 참여할 수 있고 전략 짜는 것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례가 늘어나면서 델타항공이 주도한 글로벌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두고 '델타와 아이들'이라는 비아냥가까지 나오기도 했다.
아울러 델타항공이 다른 항공사에 지분을 투자한 후 '차익'을 얻고자 지분을 재매각한 사례도 아직 없다. 이러다보니 델타항공의 다른 항공사 지분 매입은 '투자'라기보다는 해당 지역 항공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점유율과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되는 일이 많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양사는 20년 이상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이미 JV를 통해 경제 효과를 나눠왔다. 또 델타항공 입장에서 보면 다른 최대 주주가 대한항공에 들어서는 일이 달갑지 않을 상황이었다. 대한항공-델타항공 사이에 맺은 JV와 각종 계약 전반을 재검토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등 귀찮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KCGI의 투자가 '경영권 위협'까지 야기했고 이를 기회로 삼은 델타항공은 단숨에 조원태 회장의 문제를 해결해줬다. 앞으로 델타항공이 파트너십 강화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대한항공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더라도 조원태 회장 측에서는 이렇다 할 방어책이나 다른 대안이 없다. 항공기 구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JV 수익 배분에 있어서 델타항공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델타항공이 표면상 '백기사'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실은 '조원태 회장-KCGI' 사이의 분쟁을 활용해 어부지리로 자사 이익에 활용하는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델타항공이 대한항공 경영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영향과 지배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며 “델타항공이 대한항공을 사실상 지배하게 되면 면허 취소 여부가 검토되지만 그러기 위해선 대주주 지분을 넘어서야 하고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델타항공은 골드만삭스를 창구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알려진 가운데 상당히 높은 가격을 지불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계 증권사가 한진칼 주식을 매집했던 시기는 KCGI와 경영권 분쟁으로 한창 주가가 랠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특히 지난달 14일 하루에만 외국인이 한진칼 주식 309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주가를 41,200원까지 올리기도 했다. 현재 한진그룹의 승리가 점쳐지며 한진칼 주가는 30,000원으로 내려앉은 상태다.
항공업계 전문가는 “공짜 점심은 없다”며 “한진그룹이 어려운 시기에 비싸게 도움을 준 만큼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의 합작 관계가 델타항공에 현저하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25일 10:48 게재]